파울루 벤투 감독은 58년 만에 한국에 AFC 아시안컵 우승컵을 안길 수 있을까. /사진=뉴스1
파울루 벤투 감독은 58년 만에 한국에 AFC 아시안컵 우승컵을 안길 수 있을까. /사진=뉴스1

파울루 벤투 사단이 한국 대표팀에 정착한 지 어느 덧 4개월가량이 지났다. 지난해 총 6차례의 평가전에서 인상 깊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아시안컵을 앞두고 펼쳐진 평가전에서는 다소 불안한 모습을 노출한 가운데 이번 대회 결과는 벤투 대표팀의 향방을 가를 시금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상적인 경기력 선보인 2018년의 벤투호

이전 소속팀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기에 부임 당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던 벤투 감독은 지난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전임 감독들의 무의미한 점유율 확보의 행태를 탈피하고 후방부터 확실한 ‘빌드업’을 바탕으로 빠르고 적극적인 역습 축구를 선보였다. 우루과이와 칠레 등 남미의 강호를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은 경기력을 펼쳤다.

벤투 감독은 대표팀에 확실한 색깔을 입히는 작업과 동시에 본인의 축구에 맞는 적임자를 발굴하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외국 출신 감독답게 눈에 띄는 선수는 과감하게 발탁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한 주세종과 황인범은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표팀 스쿼드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독일 무대서 부활을 선언한 ‘베테랑’ 이청용도 러시아 월드컵 명단 제외의 아픔을 딛고 벤투호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A매치 6경기 동안 지속적으로 노출한 후반 집중력·체력 저하 문제 등 보완해야 할 숙제도 일부 드러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선수들이 벤투 감독의 축구철학에 빠르게 녹아들면서 2018년 마지막 A매치 경기였던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상당히 완성도 높은 경기력이 나왔다. 벤투 감독 부임 후 4개월 동안 거뒀던 3승 3무라는 성적은 요행이 아닌 수긍할 만한 결과였다.

◆실험에 나선 사우디전, 플랜B의 부실함 드러나

그러나 대표팀은 새해 첫날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일정을 앞둔 평가전에서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그동안 한국을 괴롭혔던 중동의 사우디를 상대로 실험 끝에 0-0 무승부를 거둔 것은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세부 내용이 좋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확실한 축구 스타일을 선호하는 만큼 좀처럼 포메이션과 베스트 11에 변형을 주지 않는다. 전 포지션에 걸쳐 짜임새 있는 패스 플레이를 추구하는 만큼 선수들이 시간을 두고 전술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확실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벤투 감독 전술의 핵심인 풀백에서의 공백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벤투 감독은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보다 뛰어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후방까지 내려와 패스를 뿌려줄 수 있는 선수를 선호한다. 따라서 창의성이 다소 떨어지는 만큼 풀백의 오버래핑을 이용한 공격 전개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벤투호에서 이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선수가 바로 이용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좋은 연계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골을 합작했다. 왼쪽 측면에서도 홍철이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공수에서 기여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홍철이 경미한 부상을 입은 후 회복 중이고 오랜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김진수도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서 왼쪽 풀백 자리에 공백이 생겼다. 이에 벤투 감독은 지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궁여지책으로 3-4-2-1 포메이션을 꺼내들며 실험에 나섰다.

그러나 그동안 벤투 체제에서 포백에 익숙했던 선수들은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사우디의 전방압박에 고전하면서 좀처럼 활로를 열지 못했다. 후반전 들어 구자철과 이재성을 투입하며 포백으로 다시 전환한 대표팀은 전반전보다는 나은 경기력을 보였으나 결정력 부재로 0-0 무승부에 그쳤다.

‘에이스’ 손흥민이 빠졌음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현 벤투호에서 주전 공백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었던 평가전이었다.

아시안컵 우승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토너먼트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 벤투호의 베스트 11은 분명 아시아 최정상급 전력을 보유했지만, 토너먼트 단기전에서는 부상과 같은 돌발 요소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변수에 대응할 ‘플랜 B’ 확보는 필수다. 이번 사우디전에서도 유연한 전략의 중요성이 부각된 만큼 실험을 미완으로 마친 벤투 감독의 머릿속은 한층 복잡해졌다.

지난 1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서 3-4-2-1 포메이션으로 실험에 나섰으나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던 한국 대표팀.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지난 1일(한국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서 3-4-2-1 포메이션으로 실험에 나섰으나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던 한국 대표팀.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아시안컵, 기회이자 위기일 수 있는 무대
벤투 감독과 대표팀은 지금까지 긍정적인 결과물들을 내놓으며 순항했다. 이대로 좋은 모습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선임 당시 목표로 삼았던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벤투 감독이 한국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코앞으로 다가온 아시안컵 결과에 따라 입지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월드컵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아시아 축구의 ‘맹주’로 군림했다. 그러나 유독 아시안컵에서는 달랐다. 1956년과 1960년 대회 2연패 후 무려 58년 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15년 대회 결승전에서도 개최국 호주를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이런 숙원을 풀기 위해 손흥민, 기성용 등 현재 가용할 수 있는 베스트 자원들이 총동원됐다.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승리 이후 아시안게임 금메달, 벤투호의 선전 등이 이어지면서 대표팀을 향한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따라서 벤투 감독이 아시안컵을 제패한다면 엄청난 지지에 힘입어 장기 집권의 초석을 다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우승에 실패한다면 부풀어 오른 기대만큼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벤투 감독이 부임 당시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에게 제시했던 장기 플랜도 무위로 돌아간다.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고 자주 지칭된다. 유독 단기간의 결과에 민감한 여론은 부진한 사령탑을 향해 언제든지 거센 비판을 가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간 대표팀 감독 평균 재임 기간은 평균 1년6개월에 불과할 정도로 녹록지 않은 자리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허정무 감독(2년 7개월) 율리 슈틸리케 전 감독(2년 8개월)만이 재임 기간 2년을 넘겼다. 이런 가운데 카타르 월드컵을 향한 긴 여정에 들어간 벤투호에게 있어 이번 아시안컵은 순풍 또는 악천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