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박흥순 기자 |
[집돌이 라이프, 집순이 경제학] ④·끝 ‘집돌이’의 보통날
집돌이 A씨는 혼자 있어도 세상 누구보다 바쁘다. 문제는 바깥에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 문밖을 나서기까지 큰 각오를 해야 한다. 한번 외출하면 온몸에 기운이 빠져 한동안 두문불출한다. 출근이 세상에서 가장 고된 노동이며 퇴근 후에는 뒤도 안 보고 집으로 향한다. 집돌이의 특징이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홈족’이 확산세다. 홈족은 종종 ‘집돌이’(혹은 집순이)라는 친근한 말로 불린다. 과거 인간관계 혹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문제아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던 때와는 딴판이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스스로 집돌이라고 밝히는 ‘커밍아웃’이 늘었다. 숫자가 많다보니 더이상 집돌이는 부끄럽지 않다. 최근 한 취업포털사이트의 조사결과 성인남녀 58.6%가 스스로를 집돌이(홈족)라고 여겼다. 특히 20대와 30대가 자신을 집돌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68.5%, 62.0%로 3명 중 2명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안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이들이 집에 머무는 이유는 뭘까. 기자가 홈족 따라하기를 위해 방콕 생활을 자청했다.
◆집에서만 생활하기
기자는 ‘역마살’이 낀 것처럼 한시도 같은 장소에 머무르지 못한다. 휴일이면 아침부터 집밖으로 나서 늦은 밤이 돼야 귀가하고 평일에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이곳저곳 오가기에 분주하다. 돌이켜보면 낮시간 집에 있던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집돌이 체험을 앞두고 온갖 걱정도 밀려왔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데 좀이 쑤시진 않을까’,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초등생 이후 처음 일기를 쓰진 않을까’ 따위의 걱정이다.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에서 집돌이 관련 정보를 찾았다.
| 전날 주문한 식자재가 집앞으로 배달됐다. /사진=박흥순 기자 |
오전 8시. 눈을 뜨기 무섭게 이불을 정리하고 침대에 앉았다. 평소 같으면 일정을 확인하고 외출 준비를 서두르는 시간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앞에는 전날 주문한 음식과 식자재가 놓여 있었다. 꼼꼼하게 포장된 비닐과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아이스팩이 함께 놓여 있었다. 직접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보다 5~10% 비쌌지만 배송의 편리함에 가격은 크게 상관없었다.
배송된 식자재로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한 뒤 다시 침대로 향했다. 집돌이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앱을 실행했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가 공짜란다. ‘정주행’(연재되는 글·만화·드라마·영화 등 시리즈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보는 행위)을 목표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예상과 달리 ‘정주행’은 꽤나 큰 인내심이 필요했다. 한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온몸이 근질거렸다. 수십번의 뒤척임 끝에 드라마 정주행보다 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장에서 커피를 꺼내 인스턴트 핸드드립 의식을 시작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향을 만끽했다. ‘이게 홈카페 아닌가. 집돌이 생활도 별것 아니네’라는 생각에 괜시리 뿌듯했다. 완성된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다음엔 무얼 할까 고민했다.
막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그 많은 체험기에서도 이런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다 기사를 망칠수도 있겠다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항상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행동했기 때문일까. 휴식이 낯설었다. 그 와중에 스마트폰은 열심히 푸시메시지를 쏟아내며 기자에게 빨리 움직이라고 압박했다.
| /사진=박흥순 기자 |
연신 울어대는 스마트폰을 보니 근 10년 간 영화를 볼 때를 제외하면 저 물건의 전원을 껐던 기억이 없다. 스마트폰을 보며 밥을 먹었고 음악도 들었다. 친구들과 연락할때도 일정을 관리할 때도 스마트폰이 중심이었다. 스마트폰을 곁에 두고는 진정한 집돌이의 삶을 구현할 수 없을 듯 싶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껐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꺼도 해방감이 밀려오지는 않았다. 되레 할 수 있는 일이 더 줄었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간밤 경기를 치른 좋아하는 축구팀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집밖은 얼마나 추울지 등 시덥지 않은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잡념을 떨칠 요량으로 책을 꺼내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한시간 남짓 잠을 잤다. 깊은 잠은 아니었지만 개운했다. 자리에 앉아 여운이 남은 잠기운을 음미했다. 몽롱한 기분이었지만 체험시간 중 가장 집돌이 본연에 충실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트러진 이불도 그대로 뒀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집돌이 증가현상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았다. 자타공인 집돌이 김모씨(34)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집에 있으면 그 시간과 공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란 느낌이 든다”는 말을 공감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도피처를 꿈꾼다. 불안감이 클수록 그 도피처에 대한 갈구(渴求)는 커진다. 삭막한 인간관계와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이 집돌이임을 선언하는 현상도 이와 맞물린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전쟁같은 일상을 사는 현대인은 ‘케렌시아’(안식처)를 찾는다”고 풀이했다.
온갖 정보를 뒤적이며 야심차게 시작한 집돌이 체험에 어울리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혼자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 전부였지만 나만의 공간에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나른한 편안함. 이것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진법 세상'에서 홈족이 늘어나는 원인이 아닐지.
☞ 본 기사는 <머니S> 제575호(2018년 1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