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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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에는 ‘말을 썩은 사과로 바꾼 할아버지’ 얘기가 나온다. 말 한마리가 전 재산인 할아버지가 말을 끌고 시장에 갔다가 그럴듯한 말에 현혹돼 말→암소→양→거위→암탉→썩은 사과 한자루 순으로 바꿨다는 얘기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막에 들렀다가 한 갑부를 만났다. 할아버지가 말을 썩은 사과 한자루와 바꾸었다는 얘기를 들은 갑부는 ‘할머니가 그 얘기를 들으면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참 잘 했다’고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갑부는 ‘만약 할머니가 잘했다고 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금화 한자루를 주겠다’며 내기를 걸었다.
 
집에 도착해 할아버지는 장을 본 얘기를 털어놨다. 그러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바꾼 물건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와, 우유를 마실 수 있겠네요”, “양젖도 좋지요”, “거위털이 얼마나 따뜻한데요”, “달걀을 먹을 수 있네요”, “오늘 저녁엔 맛있는 사과파이를 먹게 됐군요”라며 기뻐했다. 내기에 진 갑부는 황당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금화 한자루를 내놨고 노부부는 부자가 됐다.
◆'썩은 사과'의 두 이야기

우리는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부모형제나 지인이 이런 ‘미련한 교환’을 했다면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런 욕을 퍼붓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들고 온 썩은 사과자루를 보지 않았다. 할머니가 본 것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할아버지의 따듯한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본 마음의 눈이 있었기에 금화자루를 온전히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얘기는 일상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풍자다. 과정과 마음보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 강조하는 세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라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썩은 사과’는 경영학자 미첼 쿠지와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홀로웨이가 쓴 <당신과 조직을 미치게 만드는 썩은 사과>에도 나온다. 여기서 썩은 사과는 동화와 달리 조직을 망가뜨리는 존재의 비유다. 

사과는 에틸렌이란 물질을 많이 분출해 다른 과일과 함께 보관하면 그 과일까지 함께 썩게 만든다. 따라서 흠집 나고 썩기 시작한 사과는 다른 과일과 분리해 보관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마찬가지지로 ▲다른 사람에게 무안함을 주는 등 미묘한 괴롭힘을 일삼거나 ▲소극적 적대행위를 통해 자기중심의 소집단을 만들어 이를 보호하려고 하거나 ▲자기편이 아닌 사람은 적으로 여겨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썩은 사과’는 도려내야 조직이 부패하지 않고 잘 돌아간다. 

문제는 ‘썩은 사과’가 언뜻 보기에 경쟁심 강하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여 상사가 오히려 높게 평가하기 쉽다는 점이다. 진정한 인재와 ‘썩은 사과’를 판별해 내는 것이 지도자, 리더의 중요한 자질이자 업무 가운데 하나다.

◆다윗의 과오, ‘밧세바 증후군’

어느 날 저녁, 다윗이 왕궁 위를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에 반했다. 다윗은 그녀를 침실로 불러 동침했고 결국 임신에 이르렀다. 그녀는 다윗의 충실한 부하로 전장에 나가 있는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였다. 다윗은 우리아를 불러 노고를 치하하고 선물을 보내 집에 가서 지내라고 했다. 하지만 충직한 우리아는 부하들이 전쟁터에서 고생하는데 나만 편하게 집에 갈 수 없다며 왕궁 문에 머물렀다. 

다윗은 우리아가 집에 가서 부인과 동침해 잉태하면 자신의 ‘범죄’를 감출 것으로 여겼지만 우리아가 집에 가지 않자 할 수 없이 우리아를 전장으로 다시 보냈다. 이때 다윗은 우리아 상관인 요압에게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터에 앞세워 그가 죽도록 하라는 편지를 비밀리에 보냈다. 

이렇게 우리아가 죽자 다윗은 우리아 장례를 마치고 밧세바를 데려다 부인으로 삼았다. 여호와는 다윗의 죄를 보고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7일 만에 죽도록 했다. 하지만 다윗이 다시 밧세바와 동침해 솔로몬을 낳자 그를 사랑해 후계자로 삼았다.

'구약성서' <사무엘하> 11장과 12장에 나오는 이 얘기는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영웅 다윗이 얼마나 나쁜 죄를 지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윗은 모세 십계명 가운데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 4개를 한꺼번에 어겼다. 

미국 톨레도대학교의 딘 러드윅과 클린턴 롱거네커 교수는 다윗처럼 성공한 리더가 왜 그처럼 황당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연구한 뒤 ‘밧세바 증후군’이란 말을 만들었다.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리더는 스스로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돼 현실감을 잃고 ‘나는 괜찮다’는 오만에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과오를 저지른다는 지적이다.


‘밧세바 중후군’은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지만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은 어른답지 않은 어른’에게 일어난다. 공자는 '성인'에 대해 “'장무중'의 지혜와 '맹공작'의 불욕과 '변장자'의 용맹과 '염구'의 재주에 예악으로 무늬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논어> '헌문편')고 답했다. 

“지혜와 어짊과 용기를 천하의 달덕(達德)이라 하고, 배우기 좋아하는 것은 지혜에 가깝고 힘써 실천하는 것은 어짊에 가까우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고 한 '중용' (20장)과 비슷한 내용이다. 한마디로 능력과 인덕을 함께 갖추고 이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성인, 즉 어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인용에 예술까지 갖추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공자도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곧 이어 말을 바꿨다. “이익을 보면 옳음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랜 약속에 평생의 말을 잊지 아니하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썩은 사과의 깊은 사랑을 알고 또 그것을 도려내는 결단력이 있어 밧세바 증후군에 빠지지 않는 진정한 어른, 그런 참다운 성인이야말로 실타래보다 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그 사람(其人)이라고 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9호(2019년 2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