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민족의 대명절 설이다.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던 정겨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여전히 우리를 따뜻하게 채우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설음식, 그 중에서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떡국이리라. 새해 첫날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며 먹었던 떡국의 맛나고도 구수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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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병장수 기원 떡국…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

무릇 설이라 하면 어른들은 차례상 차릴 생각에 한숨부터 나오고 부모님 용돈, 아이들 세뱃돈 계산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겠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진즉부터 마음이 들떠 헤벌쭉한 표정을 짓고 있을 터. 그처럼 마음을 달뜨게 하는 데는 한 살 더 먹은 만큼 오른 세뱃돈과 우리가 한 살 더 먹도록 해주는 ‘떡국’이 있다. 
새해 첫날 떡국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순진한 생각은, 기원을 알 길 없는 믿음이 대부분 그렇듯 꽤나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 후기 편찬된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떡국은 색이 희다 하여 '백탕', 떡을 넣어 끓인 탕이어서 ‘병탕’이라 불렀는데 상대방의 나이를 물을 때면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설날에 먹는 떡국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떡’이라는 뜻의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불렸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뜻깊은 날인 만큼 한 해의 안녕을 빌고자 ‘흰 가래떡’으로 떡국을 만들었다. 흰떡으로 맑고 청결한 하루를 기원했고 길게 뽑은 떡을 먹는 것에 무병장수의 의미를 부여했다. 가래떡을 ‘둥글게’ 써는 데에도 이유가 여럿이다. 엽전처럼 둥근 떡을 많이 먹고 부자가 되라는 얘기, 둥근 떡이 태양을 상징해 풍년을 빌었다는 해석이 가장 널리 알려진 ‘썰’이다. 뭐가 됐든 복된 새해가 열리길 기원한 것이다.


떡국을 언제부터 먹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기록을 통해 아주 오래전부터 먹어왔다고 짐작할 뿐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 설날 떡국을 먹는 풍속이 상고시대의 신년 제사 때 음복(飮福) 음식을 먹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적었고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에는 차례와 세찬에 빠져서는 안될 음식이며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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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지방, 떡국 대신 '복주머니' 만둣국 

함경도, 평안도 등 북쪽 지방에서는 설 차례상에 떡국 대신 만둣국을 올렸다. 빚어놓은 모양이 복주머니와 비슷해 만두를 먹으며 새해 복을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만두는 조선시대 초에는 임금의 수라상에 오를 만큼 귀한 음식이었는데 중국에서 넘어온 음식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중국에도 설날이면 만둣국을 먹는 풍습이 있거니와 저 유명한 중국의 역사소설 ‘삼국지’에 만두의 유래가 나오기 때문이다.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가던 촉나라 승상 제갈량은 풍랑이 거세게 이는 강에 막혀 진군을 못하게 된다. 남만인이 사람의 머리 99개를 제물로 바쳐야만 강이 잠잠해질 거라 조언하자 제갈량은 꾀를 내어 밀가루 반죽으로 사람 머리와 비슷한 모양을 만드니 이게 바로 ‘만두’(饅頭)의 시초다. 만두를 놓고 제사를 지내자 풍랑이 가라앉았고 제갈량의 촉나라 군대는 무사히 귀환했다고 ‘삼국지’는 전한다. 만두는 ‘기만’(欺瞞)이란 단어에서 ‘속일 만’(瞞)의 음을 딴 만(饅)과 ‘머리 두’(頭)를 합쳐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떡국의 육수는 꿩고기를 으뜸으로 쳤다. 꿩으로 낸 맑은 국물의 맛이 일품이기도 하지만 꿩 자체가 귀했던 때문이다. 꿩은 매사냥에 나설 만큼 삶이 여유로운 양반의 전유물이었고 삶이 팍팍한 일반 백성은 닭으로 떡국의 육수를 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말이 ‘꿩 대신 닭’이다. 오늘날에는 떡국의 국물을 낼 때 대부분 소고기를 쓴다. 물론 같은 소고기여도 지방마다, 집안마다 재료는 제각각이다. 어느 집은 사골을 사용하고 어느 집은 양지로 육수를 낸다. 여전히 닭고기로 육수를 만드는 집도 있고 멸치육수를 사용하는 지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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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떡국
▷▷▷황해도
황해도 개성지방에서는 조랭이떡국을 끓여먹었다. 조랭이떡은 가래떡을 손가락 두마디 크기로 자른 뒤 가운데를 눌러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든다. 육수는 사골·양지 등을 끓여 만드는데 소고기 육수의 감칠맛과 조랭이떡 특유의 식감이 찰떡궁합이다. 조랭이떡의 독특한 모양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이들이 액운을 막으려고 달고 다니던 조롱박에서 이름과 모양을 따왔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한해가 길하길 기원하며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또 고려가 멸망한 뒤 한을 품은 개성 사람들이 이성계의 목을 비틀 듯이 떡을 만든 데서 기원했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충청도
충청도에서는 날떡국(생떡국)을 많이 해먹었다. 흰떡이 없을 때 만들어 먹는 떡국으로 멥쌀과 찹쌀을 섞어 반죽한 뒤 두껍게 썰어 끓는 육수에 바로 넣는다. 찌지 않고 바로 끓여내기 때문에 날떡국이라고 부른다. 지역마다 육수에 쓰이는 재료가 다르고 만드는 사람의 식성에 따라 들어가는 것도 바뀐다. 보통은 닭이나 멸치를 우려 육수를 만드는데 바지락을 넣기도 한다고. 충북지역에서는 올갱이 국물에 된장을 풀고 아욱을 넣은 올갱이날떡국이 유명하다.


▷▷▷강원도
강원도에서는 설날이면 떡만둣국을 먹었다. 이북지역의 만둣국이 남쪽 지방의 떡국을 만난 결과라고 한다. 사골로 진한 육수를 우려낸 뒤 두부까지 썰어넣은 강원도의 떡만둣국은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국물맛을 자랑한다.

▷▷▷전라도
전라도에서는 꿩떡국과 닭장떡국을 해먹는다. 꿩떡국은 꿩으로 국물을 내고 꿩고기를 고명으로 올린 진미다. 자잘하게 썬 꿩고기를 볶은 뒤 가래떡과 함께 끓여내는데 맛이 그윽하고 깔끔하기 그지없어 한 번 먹으면 ‘꿩 대신 닭’을 찾지 않게 된다고. 그러나 꿩 대신 닭을 사용한 닭장떡국의 맛도 일품이다. 살을 발라낸 닭을 끓여 육수를 낸 뒤 기름기를 제거한다. 닭육수에 닭고기와 간장을 넣고 장조림을 만들면 언제든 닭장떡국을 해먹을 수 있다. 닭고기장조림을 넣은 떡국은 짭조름하면서 구수한 맛이 자꾸 생각나는 전라도의 별미다.

▷▷▷경상도
경상도에서는 향토음식 굴떡국으로 새해를 맞는다. 소고기 대신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 국물을 내고 여기에 싱싱한 굴과 두부를 넣는다. 남해의 향을 가득 품은 굴떡국은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겨울이 제철인 굴의 쫄깃쫄깃한 식감이 떡과 어우러져 식욕을 한껏 끌어올리기 때문. 굴떡국을 끓일 때는 굴 손질에 유의하자. 수돗물로 씻으면 굴 고유의 풍미가 사라지므로 소금물에 씻어야 한다. 취향에 따라 다른 해산물을 추가하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