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지난 10일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묵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라는 우문현답(愚問賢答)이 아니다. ‘우리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줄임말이다. 문제가 일어난 현장에 가면 해결할 수 있는 답이 보인다는 뜻. 현장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 펜대만 굴리고 있는 탁상공론을 꼬집는 유행어다.
우문현답과 반대되는 말로 지상담병(紙上談兵)이 있다.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다’는 뜻의 이 말은 실전경험 없이 책만 읽고 작전을 짜면 대패할 수 있는 것을 경계한다.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장군 조괄은 유명한 장군인 아버지 그늘 아래서 수많은 병서를 읽어 병법에 능통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진나라가 침입하자 조나라는 조괄을 대장으로 삼았다. 조괄 어머니가 “조괄은 대장감이 되지 못한다”며 대장임명을 철회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왕은 듣지 않았다. 결과는 조나라 군의 대패와 조괄의 전사였다.
◆지혜롭고 기쁘게 낮은 곳으로 임하라
‘우문현답’을 알고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아메리카 대륙 예수회 출신으로 가톨릭의 ‘아웃사이더’ 격인 그는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뒤에도 줄곧 낮은 곳을 지향했다.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교황이 살던 사도궁전이 아니라 마르테호텔을 거주지로 삼아 많은 사람과 만나고 있다.
순금으로 만들었던 어부의 반지를 은도금반지로 하고 목에 거는 가슴십자가는 순금이 아니라 추기경 시절부터 착용하던 쇠로 만든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미혼모 자녀의 세례를 거부하는 사제들에 대해 “사람들과 구원의 길 사이를 갈라놓는 위선자들”이라고 질책했다.
<주역>(유교 경전)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낮은 곳 임하기’와 같은 자세를 지도자가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꼽았다. 주역의 19번째 괘 육오효는 “지혜롭게 군림하는 것이 임금의 마땅함이니 길하다”고 규정한다. 군림은 원래 임금이 친히 나라의 곳곳을 다니며 다스린다는 좋은 말이었는데 요즘은 절대적 세력을 갖고 남을 압도한다는 부정적 의미가 더 강하다.
또 “기쁘게 낮은 곳으로 임하니 바르고 길하다”(초구효), “기쁘게 낮은 곳으로 임하니 길하고 불리함이 없다”(구이효)고 했다. 말보다는 민생시찰을 통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국가 지도자 가운데 낮은 곳으로 임한 대표적 인물은 중국공산화에 성공한 마오쩌둥이었다. 그는 헐벗고 의지할 데 없는 농민이 바라는 것(자기 땅 소유)을 정확히 알고 지주에게서 토지를 빼앗아 소작농민에게 나눠줘 민심을 사로잡았다.
◆크게 보고 세밀하게 살펴라
독재자로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박정희 전 대통령도 현장을 중시했다.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정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챙김으로써 ‘보릿고개’를 없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에 빠져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유신독재체제를 만들어 스스로와 국민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비극을 만들었다.
낮은 곳에 임하되 크게 보고 세밀하게 살피라는 <주역>의 가르침을 거스른 탓이다. “내가 해 온 일을 보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결정하라”(관괘 육삼효), “나라의 빛을 봄에 왕의 손님을 쓰는 게 이롭다”(육사효)는 경계를 무시했다.
그 결과 “아이처럼 보니 군자가 인색하고”(초육효) “몰래 엿보니 역시 추하다”(육이효 소상전)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덩샤오핑이 낮은 곳에 임해 만들어 놓은 중국 개혁개방을 물려받은 시진핑 주석도 크게 보는 대관과 세심하게 살피는 하관을 하지 않아 불안하다. 인권·민주·시장경제 등의 보편적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산당독재라는 낡은 옷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시대변화에 역행하고 있어서다.
아베는 낮은 곳으로도 임하지 않고 대관하관도 하지 않은 채(자기 선조들이 행한 범죄를 사과하지 않은 채 감추고 왜곡한 채), 빚으로 나라를 되살리겠다며 ‘사기정책’을 폄으로써 일본의 뒷걸음질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스탈린도 비밀경찰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소련 해체의 원인을 제공했다. 히틀러도 낮은 곳으로 임해 1차 세계대전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대중을 사로잡음으로써 집권했다. 하지만 그 뒤 대관하관을 잘못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킴으로써 자멸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반면 링컨은 낮은 곳으로 임해 대관하관을 실천함으로써 노예를 해방하고 미국을 세계 제일국가로 만드는 초석을 닦았다. 간디는 낮은 곳으로 임해 세계 5대 성자로 평가받고 있다. 덩샤오핑도 후기 마오쩌둥의 과오를 바로잡고 함림과 대관하관으로 중국을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끌어올렸다.
◆지상담병에 진 우문현답
올해 설 하루 전날 큰 비극이 있었다. 윤한덕 중앙응급센터장이 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집무실에서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 윤 센터장은 인력(의사·간호사) 부족과 닥터헬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인계점’(헬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사전에 허가받은 곳) 제한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삶과 죽음을 바꾸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관계자 엄벌과 재발방지를 앵무새처럼 되뇌다 며칠 지나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깡그리 잊고 얼마 지나면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되는 지상담병. 고 윤 센터장은 그런 탁상행정에 맞서 응급환자를 골든타임 안에 수송할 수 있도록 우문현답을 강조했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날 때가 많았다.
“몸이 3개, 머리는 2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날이 수없이 되풀이될 정도로 최악이었지만 지상담병 하는 정치인과 복지부동하는 관료의 무사안일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나라와 정치인의 존재이유는 국민들이 외침과 재해로 인한 피해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오복을 누리도록 하는 데 있다. 지상담병을 일삼아 국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공직을 사리 얻는데 악용하는 정치인과 지도자는 국민들에 의해 퇴출될 것이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