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철 빅이슈 판매원. /사진=박흥순 기자
임상철 빅이슈 판매원. /사진=박흥순 기자

“홈리스 자립 잡지 빅이슈가 왔습니다.”
빅이슈는 2009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독특한 유통방식의 잡지다. 1991년 영국에서 노숙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창간한 빅이슈는 판매가격의 절반을 판매자가 갖는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빅이슈의 정가는 5000원. 한권을 판매할 때마다 빅이슈판매원(빅판)에게는 2500원의 수입이 돌아간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돈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3번 출구는 빅판 임상철씨(52)가 생계를 꾸려나가는 공간이자 시민과 소통하는 창구다. 18년간의 노숙인 생활을 청산하고 매캐한 먼지가 가득한 지하통행로에 좌판을 깐 지 6년여. 이제 제법 알아보는 사람도 생긴 그는 남들과 다소 다른 이력의 빅판이다.


기자가 임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서점에 자리잡은 그의 책 덕분이다. 임씨는 지난 1월 자서전 형식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라는 제목의 책은 임씨가 살면서 겪은 일을 모아 담았다. 책에는 빅이슈 독자들에게 쓴 손편지 가운데 추려낸 52통의 편지가 실렸는데 담담한 문체가 제법 매력이다.

독자들의 반응도 썩 괜찮다. 국내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임씨의 책에 ‘강력추천’, ‘베스트셀러’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무슨 사연을 지니고 있을까. 지난 2월 ‘노숙자 출신 빅이슈 판매원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동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 임씨를 만나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왜 책을 냈는지도 궁금했다.


빅이슈. /사진=박흥순 기자
빅이슈. /사진=박흥순 기자


◆예술가를 꿈꾼 도시의 들개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만난 임씨는 처음엔 다소 경직된 인상을 풍겼다. 수많은 인파속에서 제설함을 가판대 삼아 빅이슈를 진열해 놓고 앉을 공간도 없이 서서 라면을 먹던 그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 퉁명스럽게 답했다. 외로움이 느껴지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책을 내신 건가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살기 위해 책을 냈습니다”라며 입을 열었다. 임씨는 책에 실린 글과 삽화를 모두 자신이 직접 제작했단다. 그 이유를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스스로 하고 싶었어요. 글도 그림도 평소 빅이슈 독자여러분에게 손편지를 쓰며 해왔던 터라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제주도다. 임씨는 과거 자신을 가리켜 ‘들개’라고 불렀다. 여섯살 때 누군가 던진 물건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했고 막걸리를 팔아 생계를 꾸리던 어머니는 여덟살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수십년 전 임씨와 형, 여동생 삼남매를 여관방에 남겨두고 연락이 끊겼다. 여동생은 먼 친척의 집으로 갔고 임씨와 형은 보육원으로 흩어졌다.

보육원을 나와서는 고시원이나 쪽방, PC방을 전전하거나 하늘을 지붕 삼아 거리에서 한뎃잠을 잤다. 그는 18년간 살기 위해 도시를 배회하는 들개에 지나지 않았다고 소회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혼자 살아온 탓에 가족에 대한 정이 없다고 스스로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 중 대부분이 가족과 연관된 것이었다. 책에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 가족이 그리운 사람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빅판이 된 것은 2012년 겨울 즈음이다. 노숙인 쉼터에서 지내던 그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절감했다. 그렇게 의지할 곳을 찾아 영등포시장에 위치한 빅이슈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는 당시 봄이 오면 빅이슈 판매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단다.

“시작은 그해 겨울 담뱃값이나 조금 벌어볼까 하는 요량이었죠. 사실 조금 창피했거든요.” 그는 “아직도 창피하고 마네킹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잡지 독자 여러분께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더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수필가, 화가, 조각가의 길을 걸으며 자립하기 위해 일하고 있죠”라며 멋쩍게 웃었다.

◆오늘, 내일, 모레 그리고 더 멀리

임씨의 말대로 그는 빅판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글쓰기와 미술공부를 병행 중이다. 최근에는 전시회도 열었고 방두영 화백의 권유로 장애인미술협회에도 가입했다. 그는 작가 겸 화백 겸 조형가라는 자신이 원하는 꿈을 조금씩 키워 나가는 중이다.

책을 낸 구체적인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 임씨는 “빅판을 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제가 원하는 꿈을 온전히 이뤄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책을 내보자는 출판사 측의 권유가 있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중학교 졸업 후 사회에 뛰어든 임씨는 정식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고아원 시절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의 그림을 도맡았고 미술 조형물 제작공장에서 어깨너머로 조각을 배운 것이 전부다.

국내에서 변변한 학위와 경력 없이 미술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술과 관련된 직업을 갖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나 그마저도 허사였다. 임씨는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일하던 업체가 문을 닫았어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중졸 출신의 30대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뿐이었습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임씨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책을 낸 것도 미술공부를 시작한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제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 걸 원하진 않습니다”라며 “책을 낼 당시에는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에만 집중하기 위해 제목을 지었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조금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항상 눈앞의 현실에 몰두해왔는데 이제 그보다 더 멀리 보려 합니다. 쉽진 않겠지만요”라며 웃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2호(2019년 3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