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는다. 튼튼한 씨가 좋은 땅을 만나 될 성부른 떡잎이 나고 때맞춘 단비를 먹고 회초리보다 더 매운 가마솥 삼복염천 햇살과 천둥번개 함께 그러모은 뒤 서릿발 회초리 달게 받고 살 에는 북풍한설 견뎌 담금질을 한해 한해 또 한해하며 만들어질 뿐이다. 영웅은 잘 익은 홍시처럼 뚝 떨어지지 않는다.


맹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중대한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를 괴롭게 하고 그 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그 몸과 살갗을 굶주리게 하고 그 자신을 곤궁하고 핍진하게 하여 행함에 그 하는 바를 어긋나게 하고 어지럽게 하나니, 이로써 마음을 흔들고 성질을 참게 하여 더욱 그 능치 못한 바를 더하게 함이니라.”(<맹자> <고자하>편 15장)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로이터

◆존 밀턴의 실락원과 김구의 백범일지


“인도하라, 우라니아여. 비록 수는 적더라도 좋은 청중을…”


존 밀턴은 불후의 명작 <실락원> 7편에서 이렇게 읊었다. 우라니아는 음악, 미술, 문학, 철학, 역사 등을 관장하는 아홉 명의 무사이(뮤즈) 자매 가운데 한명. 밀턴은 두 눈을 완전히 실명한 상태에서 4년 동안 구술로 <실락원>을 완성하면서 그의 심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청교도혁명(1640~1660년)으로 이룩한 공화정이 정착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 과로로 두 눈의 시각을 완전히 잃었지만 공화정이 무너지고 왕정이 복고되는 고통을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되는 것에 비유한 <실락원>. 밀턴은 소수만이라도 신념을 잃지 않고 그 꿈을 이어나간다면 공화정은 다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유지하며 <실락원> 뒤에 <복락원>을 썼다.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한 뒤 광복 때까지 한번도 떠나지 않고 지킨 백범 김구(본명 김창수, 1876~1949년) 주석은 <실락원>을 읽었을까? <백범일지>나 그 외의 기록물에서 아직까지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실패에 낙담하지 않고 더 큰 희망을 불태우며 항일독립투쟁에 나선 백범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밀턴과 일맥상통하는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평생 스승 고능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명성황후 시해를 복수하기 위해 일본 장교를 맨손으로 때려죽였다.


인천 감옥에 수감됐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탈옥했고 김구로 개명하며 항일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그 뒤 호를 백범(백정같은 보통 사람들도 나라를 사랑할 때 나라가 독립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름을 김구(일제가 만든 호적과 영원히 이별한다는 뜻으로)로 바꾼 뒤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이후 김구는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 가운데 유일무이하게 대한민국에서 국민군대인 광복군을 창설하고 결국 카이로선언을 이끌어 내 독립을 쟁취했다.
◆발자취 남긴 위인들


인류역사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비슷하게 주어진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고 수백, 수천년이 지나도 그들의 삶과 이름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순신은 혁혁한 승리에도 해군참모총장에서 계급도 없이 싸움터에 나선 백의종군이란 수모를 겪었지만 순신불사 상유십이(舜臣不死 尙有十二), '이순신이 죽지 않았고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는 무한한 신념과 긍정마인드로 명량과 노량에 최후의 승리를 거뒀다.


추사 김정희는 안동 김가 세도정치 파편에 맞아 오랜 세월 제주도와 함경도에서 유배생활을 보내면서도 <세한도>(국보 180호)와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같은 신품을 창작했다. 그가 만들어 낸 독특한 붓글씨인 추사체는 서법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티스버그 연설과 ‘노예해방’으로 유명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이혼과 되풀이되는 낙선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북미회담 결렬… 죽음으로 부활한 고종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그리고 남북경제협력 및 교류확대 등의 희망을 안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지난달 27~28일 열렸던 2차 북미정상회담이 구체적 성과를 얻지 못하고 결렬됐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 사이에 ‘개념차이’가 있었고 미국이 주도하는 UN(국제연합)의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양국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노이북미정상회담 결렬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을 열망하고 있는 한민족에게 커다란 시련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가시화됐던 평화정착 실현이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지만 다시금 멀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협상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북미가 결렬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앞으로 협상을 계속해 나가는 ‘좋은 관계’를 확인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100년 전, ‘고종독시’는 3.1 대한독립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갑오왜란’과 ‘갑진왜란’이라는 2차례 일본의 불법적 침략으로 국권을 강제적으로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고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고 베이징으로 망명을 추진하던 고종은 죽음으로써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를 통해 부활했다.


소크라테스는 충분히 살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시고 죽음으로써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 되었다. 영웅과 역사는 온실 속에서가 아니라 거친 들판의 북풍한설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잡초보다 강한 생명력과 의지력으로 길러지고 이뤄진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3호(2019년 3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