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경고'도 이제 먹히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가맹계약 해지라는 초강수를 두며 카드업계의 카드수수료 인상안을 거부했다. 시장은 카드사의 '완패'로 본다.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대형마트, 통신사 등 다른 대형가맹점들도 수수료 인상을 거부하고 나섰다. 당국이 이번엔 '형사고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강하다. 시장의 관심은 '수수료 2라운드'로 옮겨졌다. 현대차 이후 다른 대형가맹점과 줄줄이 협상을 갖는 카드사가 당국의 지원 아래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핵심이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수수료 갈등에서 승자나 패자는 없고 '정책 실패'에 따른 피해자만 있다는 것이다. 가맹점 규모가 클수록 더 높은 수수료를 매겨야 한다는 '역진성 해소' 정책에 따라 발생한 카드수수료 갈등은 결국 잘못된 정책이 부른 참사라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재벌가맹점 카드수수료 갑질에 대한 금융당국의 철저한 감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금융노동자 공동투쟁본부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재벌가맹점 카드수수료 갑질에 대한 금융당국의 철저한 감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금융노동자 공동투쟁본부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역진성 해소' 카드, 어디서 나왔나
3년마다 돌아오는 카드수수료 적격비용(원가) 재산정 시기를 앞둔 지난해 중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한 카드수수료 인하는 예견된 일이었다. 카드업계는 수수료 인상 또는 동결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관건은 수수료를 우대(낮은 수수료율로 동결)해주는 대상이 얼마나 확대될지, 기존 우대수수료율이 얼마나 낮아질지였다.


반면 대형가맹점은 적격비용 재산정과 관련한 각종 논의에서 벗어나 있었다. 적격비용 재산정 작업은 사실상 우대수수료에 대한 새로운 정부 고시가 내려지는 이벤트라 카드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대형가맹점은 이전의 재산정 작업 때도 논의 밖이었다.

대형가맹점이 카드수수료 이슈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11일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이날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종구 금융위원장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높은 카드수수료 원인이 (카드업계의) 마케팅 비용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 캐시백·무이자할부 등 마케팅비용을 대폭 줄이면 수수료 원가가 내려가 카드수수료를 더 인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최 위원장은 답은 이렇다. "(카드사가) 대형가맹점에 마케팅 비용을 상당히 쓰고 있다. (적격비용 재산정 시) 마케팅 비용구조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

'과도한 마케팅 비용' 문제는 늘 있었다. 신(新)가맹점수수료체계가 도입된 2012년 이전에도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마케팅비용 문제에 소비자 대신 가맹점이 끼었다는 점에서 이날 발언은 결이 달랐다. 그간 마케팅비용은 가맹점이 아닌 소비자와의 문제가 우선이었다. 카드이용자가 연회비보다 막대한 마케팅혜택을 보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또 '해당 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논의로도 확대되곤 했다. 하지만 이날 언급된 마케팅비용은 대형가맹점의 부담을 늘려 일반 또는 영세·중소가맹점의 수수료를 낮춰야 하지 않냐는 문제의식으로 해석됐다.


이러한 해석은 10월26일 최 위원장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한국마트협회와 면담하면서 당국의 계획으로 자리잡았다. 대형마트가 중소상공인보다 낮은 수수료를 적용받는 건 불공정하다고 주장한 협회 측에 최 위원장은 "그 문제를 적극 검토하고 마케팅 비용 구조개선 등도 함께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11월26일 금융위원회는 '역진성 해소'를 주된 내용으로 한 카드수수료 종합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가맹점에 적용되는 '개편 기본방향'은 수수료 부담 경감과 더불어 '가맹점 간 부당한 수수료 격차 해소'다.

◆정부정책인데 '갈등' 발생한 까닭

이 과정만 놓고 보면 카드사와 현대차 간 갈등은 발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카드사의 수수료 인상안이 정부정책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가맹계약을 해지하면서까지 카드사에 수수료 조정을 요구한 현대차는 결국 정부에 반기를 든 셈이 된다.

하지만 카드업계와 금융전문가들은 정부의 '어설픈 정책'이 낳은 예견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적격비용 산정방식을 개선해 대형가맹점 수수료 인상을 위한 논리는 만들어 놨지만 구체적인 정책 실행 방법은 없었다는 것이다. 카드수수료는 적격비용에다 카드사가 마진을 붙여 구성된다. 현행법상 카드사는 적격비용 이상의 수수료를 받기만 하면 된다. 마진을 포기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이론적으론 대형가맹점 수수료의 적격비용이 종전보다 높아져도 마진을 줄이면 수수료는 오히려 내려갈 수도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대형가맹점과의 협상은 '마진'을 둔 싸움"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달 새 금융당국이 두번이나 대형가맹점에 경고를 날렸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금융위는 현대차와 카드사 간 갈등이 고조되던 지난달 19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대형가맹점이 과도한 협상력에 의존해 카드수수료를 부당하게 인하해달라고 하는 건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실상 현대차에 대한 1차경고였다. 갈등이 봉합됐지만 다른 대형가맹점의 수수료인상안 거부사태가 불거지자 금융위는 이달 19일 또 한번 브리핑을 열어 "협상이 완료된 대형가맹점의 카드수수료 적용실태 점검결과 위법사항 발견 시 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했다. 대형가맹점과 카드사 간 수수료 갈등의 단초가 된 현대차를 겨냥한 것인 동시에 협상이 진행 중인 다른 대형가맹점에 수수료 인상안 수용을 압박한 것이란 분석이다.

당국이 카드사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지만 카드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카드사 관계자는 "당국이 형사처벌 조치를 검토중이라 했지만 현실적으론 계약 당사자인 카드사가 가맹점을 고발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와의 수수료 협상에서 카드사가 완패했다고 했지만 어쨌든 조금이라도 올렸으니 선방한 것이다. 대형가맹점이 마진을 포기하라고 할 경우 카드사로선 협상할 카드가 없다"며 "원가 이상만 맞추면 된다. 마진을 모두 포기했다 해서 대형가맹점의 '부당한 인하 요구'로 볼 수 있나. 형용사 '부당한'에 해당하는 기준이 없는데 무엇을 근거로 법적 검토에 나서려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금융전문가들은 수수료개편 설계부터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이명식 상명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시장가격이 설정되는 과정에서 '역진성'이란 개념이 어딨냐"며 "논리가 없는 괘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가격 설정은 카드사와 가맹점 간 문제인데 정부가 개입하면서 꼬였다"며 "그런데 이번 갈등 과정에선 조정자로서 개입해야 할 때를 놓치고 뒷짐만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시장논리상 대형가맹점일수록 낮은 수수료를 매기는 게 맞다"면서도 "현실적으론 우선 우대구간과 대형가맹점 기준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전체 가맹점의 96%가 우대수수료를 적용받는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5호(2019년 3월26일~4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