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권은 망하지 않는 산업이라고 생각해서요.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합니다"
1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안모씨(30)는 금융권 취업을 희망하는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금융권 취업을 위해 인공지능(AI) 관련 역량도 따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AI를 사용해보면서 필요한 부분을 익히고, 기초적인 지식을 갖추기 위해 관련 자격증도 준비 중이다.
이날 DDP 아트홀은 '2026 금융권 공동채용 박람회'가 열려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로 붐볐다. 은행·보험·증권·카드·캐피탈·금융공기업 등 역대 최대 규모인 82개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금융권 취업을 둘러싼 청년들의 관심이 여전한 가운데, 현장에선 AI와 디지털 전환으로 달라지는 금융사의 채용 풍경도 확인됐다.
"현장면접에서 AI 역량 관련 질문도 나와"

청년들이 금융권을 찾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안정성이었다. 고다현씨(27)는 "금융권 취업을 희망하고 일반행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안정적이라서 은행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직 AI 역량을 별도로 공부하고 있지는 않지만, 은행원이 갖춰야 할 인재상과 필요한 역량에 관심을 보였다.
정보기술(IT) 개발자를 목표로 하는 경나은씨(26)는 현장면접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사 취업에 도전하고 있었다. 현장면접은 우수 면접자에게 향후 공채 과정에서 서류전형 면제 등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부터는 은행권뿐 아니라 한국투자증권과 중국공상은행 서울지점까지 확대됐다. 경씨는 "현장면접에서 AI 역량이 발전한 상황에서 은행원의 자질은 무엇이 있을지 등 AI 관련 질문이 나왔다"고 말했다.
다만 취업준비생 입장에선 AI를 둘러싼 채용 기준이 아직 모호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정윤씨(26)는 "자기소개서에 AI를 쓰면 걸러낸다고 하면서 동시에 AI 역량을 요구하는 게 모순적이라고 느껴진다"며 "신입에게 어떤 AI 역량을 원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채용담당자 "기술을 업무에 접목할 수 있는 융통성 중요"

금융사 채용담당자들은 AI 자체를 잘 다루는 것만으로 합격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대신 AI를 업무에 접목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기존 금융 업무를 이해하는 역량을 중요하게 보고 있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 내에서도 AI를 많이 활용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선택을 AI에 맡기지는 않는다"며 "AI 전환(AX)을 위해 기존 인력을 활용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2022~2023년 IT 인력을 대규모로 채용한 만큼 현재는 해당 인력을 활용하면서 정보보안 등 특정 분야의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IBK기업은행도 디지털·IT 인력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채용에서 디지털·IT 인력 비중을 늘렸고 앞으로도 강화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반 행원은 영업점 근무를 위해 고객 응대와 소통능력, 고객서비스(CS) 능력이 중요하고 금융에 대한 관심과 기초지식도 필요하다"고 했다.
iM뱅크는 AX 전환을 위해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인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iM뱅크 관계자는 신입사원에게 필요한 역량으로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업무에 접목할 수 있는 융통성"을 꼽았다. 전문적인 기술 분야는 전문 경력직으로 보완하는 만큼 신입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잘 받아들이고 조직에 적응하는 능력을 본다는 설명이다.
"AI 활용 능력 가진 지원자 과거보다 많아져"

인터넷은행도 AI 활용 경험을 눈여겨보고 있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지원서에서 AI 활용 능력을 어필하는 지원자가 과거보다 확실히 많아졌다"며 "주니어 지원자의 경우 AI 활용 경험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 IT 직무의 경우 서버 등 직무와 관련된 부트캠프나 수업 경험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부트캠프는 단기간에 강도 높은 실무 교육을 통해 즉시 현장에 투입될 인재를 양성하는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뜻한다.
AI 교육 전문가인 정성교 건양대 반도체공학과 겸임교수는 금융권에서 필요한 AI 역량을 단순히 'AI를 잘 쓰는 능력'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인 AI 리터러시가 필요하다"며 개인정보를 AI에 그대로 입력할 경우 정보 유출이나 보안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AI 활용과 함께 보안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금융권,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 적극 채용 부탁"

금융권의 높은 임금 수준도 청년들의 관심을 끄는 배경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4대 금융지주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올해 상반기 임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1억850만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1억100만원보다 750만원 늘었다. KB금융이 1억21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우리금융 1억1000만원, 하나금융 1억600만원, 신한금융 9700만원 순이었다.
핵심 계열사인 은행권도 마찬가지다. 4대 은행 임직원의 상반기 평균 급여는 715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0만원 증가했다. 신한은행이 750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하나·우리은행이 7100만원, KB국민은행이 6900만원이었다.
'연봉 1억원'으로 대표되는 금융권의 매력 뒤에는 채용 구조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IT 인력을 늘리는 동시에 일반 행원에게도 AI와 디지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이날 행사에서 'AI 에이전트 시대,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금융업 필요 역량'을 주제로 발표한 김상윤 디지털 경제학자는 "세상의 변화를 AI가 주도하고 있다"며 "향후 AI가 인간의 업무 수행 능력을 넘어서는 시점에는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취업준비생 역시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시대에 무엇이 요구될지를 파악하고, AI와 협업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환영사에서 금융권의 채용 환경이 AI 도입과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심화 등으로 청년들이 느끼는 취업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융산업 전반의 혁신과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금융권이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육성해 주기 바란다"며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등을 감안해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청년들에게 인턴 경험과 다양한 직무체험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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