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장군 초상. /사진=이미지투데이
충무공 이순신장군 초상. /사진=이미지투데이


“네가 주인이다. 홀로 살아가라. 걸어가라 자유로운 길을. 자유로운 정신이 너를 이끄는 곳으로…”라며 자유를 찬양했던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은 1837년 2월8일, 그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한 대목처럼 죽음을 맞이했다.
“장사꾼은 일어나고 행상인은 거리를 지나가고 마부는 대기소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오흐타에 사는 처녀는 물동이 이고 총총, 발밑에선 밤새 내린 눈이 뽀드득… . 정확함을 자랑하는 독일인 빵집 주인, 종이로 만든 고깔모자 쓰고서 벌써 몇차례나 쪽문을 열어젖힌다….”

푸시킨은 그날 조르주 단테스와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벌이다 총알에 맞았고 이틀 뒤에 숨을 거뒀다. 서른여덟의 창창한 나이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라고 노래했던 그였지만 그의 아내 곤차로바와 단테스의 ‘염문’은 그를 분노케 했고 기쁨의 날은 오지 않았다.


◆민주당·자한당의 인정투쟁

좀 더 살았더라면 더 나은 러시아 만들기에 기여했을 푸시킨이 결투로 죽은 것은 아내를 탐하는 단테스로부터 사랑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사랑과 명예가 지켜졌는지는 의문이지만(그는 그가 죽기보다 단테스를 죽일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비명횡사라는 비극으로 삶을 마감했다.


지난 4월을 뜨겁게 달궜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지정을 놓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극한갈등을 풀지 못하고 있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바른미래당은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 문제로 심각한 내분에 휩싸여 존립마저 위협받는 실정이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0.3%로 뒷걸음질쳤는데도 경제를 살리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민생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곁가지에만 매달리는 여·야당의 ‘집단이기주의’는 “근본이 어지러운데 끝가지를 다스리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대학>의 가르침을 위배한다. “물건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선후를 알면 도에 가깝다”에도 어긋난다.

헤겔은 무한한 욕구를 가진 인간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싸움을 벌인다고 지적했다. 싸움에서 이기면 주인이 되고 패배하면 노예가 되니 주인이냐 노예냐를 받아들이는 싸움이라는 뜻에서 ‘인정투쟁’이라 했다. 그런데 주인은 노예가 제공하는 삶의 수단에 의존하면서 점차 무기력해지고 노예는 노동하는 과정에서 자아를 실현함으로써 결국 주인과 노예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것이 헤겔이 제시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승자의 저주’ 벗어나라


패배할 것을 알아도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게 용기다. 5000 결사대로 5만 신라군과 맞선 계백 장군이 그랬다. 싸우면 유비무환 임전무퇴로 반드시 이기는 게 지혜이며 애민이다. 23전23승으로 바람 앞의 등불 조선을 살린 이순신이 그랬다.

싸워야 하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싸우지 않는 게 비겁이다. 친일에 앞장선 최남선, 이광수, 윤치호, 서정주 등이 그랬다. 싸울 때가 아니고 싸우면 패배하는데 무모하게 싸우는 게 만용이다. 때 모르는 철부지들이 그러했다. 군자불쟁(君子不爭). 군자는 다투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예 싸우지 않는 건 아니다. 3·1운동의 비폭력평화 독립만세운동의 얼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상하이임시정부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는 물론 광복군을 조직해 일제와 목숨 걸고 치열하게 싸웠다.

불법침략과 강제합병을 무효화하고 자유와 독립을 되찾기 위한 정의로운 싸움, 즉 정전이었다. 민주당과 자한당의 싸움은 과연 정전일까. 요란스럽게 싸워도 이기는 쪽 없이 모두 패배자가 되는 싸움이 아닐까. 이기더라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지지를 잃는 상처뿐인 영광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을까.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이승’을 최고의 전략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때는 “나를 알고 적도 알아야 위험하지 않으며 나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패배한다”고 지적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있어 조선과 선조는 기사회생했다. 이순신은 왜가 침략하기 전부터 철갑선인 거북선을 건조하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다는 유비무환을 실천했다. 실제로 왜란이 일어나자 일본 수군 동향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 그들이 움직이는 길목을 지키고 아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전법을 폄으로써 싸울 때마다 이겼다.

◆죽음으로 살아남은 '영원한 영웅'


이순신이 있음으로써 조선의 곡창지대인 호남을 안전하게 지켰다. 선조가 서울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란 가는 극한상황에서도 명군의 구원병을 받아 반격할 수 있는 튼튼한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의심과 질투심 많은 선조는 이순신을 ‘명령불복종’이란 죄를 씌워 죽기 직전까지 고문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만은 부지한 채 계급도 없이 군인으로 싸우며 ‘백의종군’했다. 그 사이 선조의 잘못된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원균은 왜군의 계략에 말려들어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을 궤멸시키고 전사하는 불행을 겪었다.

선조는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을 다시 기용했고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물리친 뒤 반격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그는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전사했다. 승리한 뒤 개선하면 선조에게서 죽임을 당할 것을 내다본 그는 전사함으로써 영원한 영웅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주역> 28번째 택풍대과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갈 정도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설명하고 있다. 위와 아래, 즉 본말이 약해 도리가 흔들려 집이 무너질 위험이 있을 때는 신속히 그 위험에서 벗어나야 형통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주인이 일하라고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집단이기주의에 물들어 ‘땅 뺏기 싸움’에 빠져 있다. 경제가 뒷걸음질치고 집이 무너질 정도로 흔들거리는데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신선놀음에 빠져 있는 국회의원’에게 박수칠 주인은 아무도 없다. 주인이 분노하면 일꾼을 갈아치우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천리다. 민주당과 자한당은 이순신을 만들어 놓고 싸우고 있는가.

☞ 본 기사는 <머니S> 제591호(2019년 5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