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세대교체·일본 수출규제 등 다사다난
신사업규제·노동법안 등 경제정책 놓고 혼란2019년 재계는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다. 안으로는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을 놓고 일선 산업현장에 혼란이 빚어졌고 밖으로는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통상환경 악화로 국내기업들이 위기극복 해법을 고민해야 했다.
재계의 큰별이 잇따라 저물고 오너 3·4세대를 중심으로 세대교체가 가속화되는 등 새로운 변화도 있었다. <머니S>가 기해년 재계를 뒤흔든 10대 뉴스를 꼽아봤다.
◆큰별 지고 샛별 뜨고… 재계 세대교체
|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 사진=LG |
앞서 지난 3월에는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87세에 노환으로 타계했고 4월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70세의 나이에 갑작스레 별세했다. 한국기업의 산업화와 글로벌화를 이끈 경제원로들의 잇단 타계소식에 재계는 슬픔에 빠졌다. 이로써 한국 경제성장의 격동기를 함께한 1·2세대 경영인들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대신 3·4세대 경영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이 이미 세대교체를 마친 데 이어 올해 연말 정기인사에 GS, 한화, LS 등 주요그룹 오너 3·4세들이 잇따라 경영일선에 전진배치 됐다.
GS는 2004년부터 15년간 그룹을 이끈 허창수 회장이 퇴진하고 그의 넷째동생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이 신임 회장에 추대됐다. 여기에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4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전무가 부사장에 올랐고 LS 오너 3세인 구본혁 LS니꼬동제련 부사장도 예스코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한진그룹도 고(故)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아 3세 경영을 시작했다.
◆투자보따리 푼 기업들
| 지난 10월10일 탕정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에서 열린 신규투자 및 상생협력 협약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박영태 기자 |
삼성전자는 지난 4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0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2025년까지 QD디스플레이 생산시설 구축과 연구개발에 13조1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2025년 세계 3위 글로벌 전동차 제조기업으로 도약하고 플랫폼 서비스사업에서도 수익 창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2025년까지 총 61조1000억원을 투자한다. 현대모비스는 3000억원을 투자해 울산 이화산업단지에 친환경 부품공장을 짓기로 했다.
LG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LG화학을 통해 지난 7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인 ‘구미형 일자리’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 배터리의 핵심 원재료인 양극재공장을 신설하고 지역사회와 성장을 함께 한다는 내용이다.
효성은 지난 8월 2028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탄소섬유 생산규모를 현 2000톤에서 2만4000톤까지 늘리고 글로벌 점유율을 2%에서 10%로 확대해 글로벌 톱3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외에 하림은 익산에 2024년까지 8800억원을 투자해 2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위기 아닌 기회, 일본 수출규제
| 지난 7월18일 세종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일본 아베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강종민 기자 |
일본은 전략물자가 제3국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국가안보상 이유로 수출을 제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주요 소재·부품·장비를 일본에 의존하던 한국기업들은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로 활로를 찾았다. 삼성전자는 9월부터 국산 불화수소를 일부 공정에 투입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10월부터 국산 불화수소를 납품 받고 있다.
LG디스플레이도 9월부터 공정 전반에 쓰는 불화수소를 100% 국산화했으며 삼성디스플레이도 국산 불화수소를 생산라인에 적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머티리얼즈는 불화수소 국산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들 외에도 더 많은 기업들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출규제 초기에는 공급처 다변화와 국산화 작업이 최소 6개월 이상은 걸릴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있었지만 국내기업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대일의존도를 탈피하며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오히려 일본의 피해가 한국보다 더 큰 상황이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시작되며 일본맥주, 의류, 자동차 등의 소비량이 급감해 위기를 맞은 것. 또한 올 7∼10월 일본의 대한국 수출액 감소율은 14.0%로 한국(7.0%)보다 감소규모가 두배나 컸다.
◆친시장 or 반시장? 국민연금 경영개입
|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 / 사진=뉴시스 이영환 기자 |
당시 국민연금은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 중이던 조양호 회장을 겨냥해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의 정관변경 안건을 제안했다. 이 안건은 3월 주주총회에서 찬성비율 미달로 부결됐다.
하지만 민간기업에 대한 관치경영, 과도한 경영권 침해 논란으로 비화되며 지금까지 재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대주주의 사익을 위해 회사를 유용한 행위를 견제하기 위해선 국민연금의 경영개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는 내년 주주총회에서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 가운데 지분을 10% 이상 보유한 기업이 100개로 늘어나 참여 범위가 넓어진 것.
특히 국민연금은 지난달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앞으로는 횡령·배임 등 법령 위반 혐의가 드러났거나 지속적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기업의 이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등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게 된다. 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 등을 반영하는 책임(ESG) 투자 원칙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잊을만하면 일탈… 재벌가 마약파문
| 지난 10월24일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씨가 변종대마를 흡연하고 밀반입한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석방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김병문 기자 |
이씨는 해외에서 구입한 마약을 항공편으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돼 지난 9월 구속기소, 10월 말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검찰이 곧바로 항소해 내년 1월 2심 재판이 열린다.
이씨 외에도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인 황하나씨,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 정현선씨, SK그룹 창업주의 손자 최영근씨 등 유력 재벌그룹 자제들이 올들어 줄줄이 마약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들이 모두 ‘초범’, ‘반성’ 등을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점에서 법원이 재벌가에 유독 관대한 처벌을 내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재벌 오너일가의 잇단 마약 추문이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비뚤어진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오너일가 자제들은 어릴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라며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갖다보니 범법행위를 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은 것 같다”며 “갑질과 마찬가지로 ‘내가 이 정도하는 건 별거 아니다’라는 왜곡된 의식에서 범법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기대 컸는데”… 힘 빠진 대형 M&A
|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가 이착륙하는 모습. / 사진=뉴시스 홍효식 기자 |
‘제2의 국적항공사’인 아시아나 매각 소식에 업계는 국내외 주요그룹이 참여하며 올 하반기 가장 뜨거운 M&A장이 설 것으로 예상했다. SK그룹, 한화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이 유력한 인수후보로 떠오르면서 열기를 더했다.
하지만 후보로 지목된 기업들은 “인수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실제 본입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본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 제주항공(애경)-스톤브릿지 컨소시엄, KCGI-뱅커스트릿 컨소시엄 3곳 뿐이다. 이 중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인수 주인공이 됐다.
웅진코웨이도 비슷한 케이스다. 렌털업계 압도적인 1위 자리를 구축하고 있는 기업인 만큼 업계는 웅진코웨이 인수전에 국내외 렌털기업이 뛰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SK네트웍스 등 유력후보들이 본입찰에 불참한 것. 대신 게임업체인 넷마블이 인수 막판에 깜짝 참전했다.
넷마블은 인수가로 1조80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달이 넘도록 본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서 매각이 난항을 겪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냉온탕 오간 K바이오
| 지난 7월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인보사 사태’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가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성동훈 기자 |
코오롱생명과학은 올해 인보사사태로 곤욕을 치렀다. 미국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 케이주’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 받는 과정에서 주요 성분에 대한 허위자료가 제출됐다는 의혹을 받으며 허가가 취소된 것.
이로 인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코오롱생명과학 임원이 구속기소되는 등 후폭풍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 신라젠과 헬릭스미스 등은 거의 확정적이라는 신약개발이 임상3상에서 중단됐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되는 등 악재가 끊이질 않았다.
반면 SK바이오팜은 지난달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심사 개시 1년여 만에 신약승인을 받았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엑스코프리의 글로벌 가치는 5조4000억원으로 내년 2분기 중 판매가 본격화 되면 SK바이오팜의 매출도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홍가혜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점유율 확대에 따라 연간 최대 매출액을 1조원 이상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갈길 먼 공유경제… 타다금지법 논란
| 지난 6월19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앞에서 열린 ‘타다 서비스 중단 촉구 집회’에서 서울개인택시운송조합 조합원들이 택시 우측 면에 ‘타다 OUT!’이 적힌 현수막을 부착해 놓고 있다. / 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
타다는 스마트폰 앱으로 11인승 승합차를 호출하는 서비스다. 고객이 승합차를 호출하면 타다 자회사인 VCNC가 차량 공유업체 ‘쏘카’로부터 렌터카를 빌려 운전기사와 함께 다시 고객에 빌려준다. ‘공유경제’의 대표적인 모델로 주목받았으나 사실상 변종 택시영업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국회는 타다 영업에 제동을 걸었다. 관광 목적으로 11~15인승 승합차를 빌리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운전자를 알선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만들어 현재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뒀다.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는 타다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타다금지법’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경영계는 정부의 타다금지법에 반발한다. 새로운 유형의 사업을 원천 차단하는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어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미래를 막아버리는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또 다른 미래 역시 정치적 고려로 막힐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택시를 보호하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미래를 막는 방법이 유일한 대안인지 납득이 안간다”고 지적했다.
◆“너무 빨랐나”… 노동정책 숨고르기
| 지난 11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52시간제 현장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신웅수 기자 |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주 52시간제를 적용받는 50~299인 사업장에 일괄적으로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3~6개월의 시정기간을 추가로 부여하기로 했다.
자연재해와 재난 등에 국한됐던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요건도 ▲응급환자의 구조·치료 ▲갑작스럽게 고장난 기계 수리 ▲대량 리콜사태 ▲원청의 갑작스런 주문으로 촉박한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일시적 연장근로 초과가 불가피한 경우 등으로 확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도 사실상 철회됐다. 고용노동부가 확정한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8590원으로 올해보다 2.87% 상승한 것이다.
이는 2018년 상승률인 16.4%, 2019년 상승률인 10.9%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지난 2년간 임금이 급격하게 올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지불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속도조절을 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노동정책 속도조절이 노사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노동개악’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반면 경영계는 정부의 조치가 미흡하다며 보다 근원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정책을 둘러싼 잡음은 새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더 예리해진 공정위 칼날
| 지난 11월26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관으로 열린 7대 공기업 공정경제 정착 및 확산을 위한 협약식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장세영 기자 |
올 들어 대림산업과 태광그룹 총수일가가 잇따라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혐의로 검찰 고발 및 과징금의 제재를 받았다.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뒤를 이어 지난 9월 취임한 조성욱 위원장도 이 같은 원칙을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는 편법적인 경영승계나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성장기반을 훼손한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공정위는 자산규모 5조원 미만 기업집단의 불공정 행위도 제재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제재 대상이 기존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이었지만 규제사각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견기업의 불법행위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기업규모와 상관없이 시장에서 반칙행위가 있을 경우 법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제재하고 자산규모 5조 미만 기업집단에 대해서도 과거보다 많은 자료를 통해 모니터링할 것”이라며 “부당한 내부지원 있는 경우 이 부분에 공정하게 법집행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최근 SPC와 아모레퍼시픽의 일감몰아주기 혐의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상정했다. 제재 수위 등 최종 결론은 내년 초쯤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4호(2019년 12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