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읍 세화리, 작은 마을로 떠난 겨울여행
| 20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해변 풍경. /사진=박정웅 기자 |
세화해녀민속오일시장(세화오일장, 끝수 5·0일)에서 하도리 별방진까지 작은 어촌에서 하루여행이 완성된다.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겉멋 요란한 여행은 아니다. 수수하면서도 되새겨볼 구석이 많은 속이 꽉찬 여행이라 발걸음은 멈추기를 거듭한다.
◆제주해녀항일운동과 세화오일장
| 세화해녀민속오일시장 입구. 오른쪽에는 해녀상이 있고 해녀들의 항일투쟁사를 기록했다. /사진=박정웅 기자 |
20일, 때마침 열린 세화오일장을 찾았다. 이 장은 1912년 옆마을 하도리 별방진에서 열린 것을 시초로,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1930년대 최대 항일운동인자 최초 여성 주도 항일운동인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시작된 장터다.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김계석, 고순효 등 5명의 해녀 대표가 이끈 제주해녀항일운동은 1931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졌다.
| 세화오일장 내부. /사진=박정웅 기자 |
| 세화오일장 내부. /사진=박정웅 기자 |
이를 시작으로 제주 전역에서 1만7000여명이 항일운동이 참여했다. 총 230회의 시위와 집회로 발전한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기록된다. 세화오일장 정문 오른쪽에는 제주 해녀 조형물을 세워 역사적인 사실을 알린다. 시장의 크기를 따지다면 제주에서 으뜸인 동문시장을 한참이나 따라갈 순 없겠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과 한적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해산물부터 채소, 과일, 잡화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고 요깃거리도 웬만해서다.
◆물 안팎의 모진 삶 내뱉는 숨비소리
| 제주해녀박물관 전경. 박물관 위에는 불턱 모양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
해녀박물관은 제주해녀항일운동의 발상지에 자리한다. 제주해녀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제주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정신을 확인한 것이다. 제주해녀들의 생존과 삶, 자존의 역사를 담은 공간이다. 생활풍습, 무속신앙, 공동체 생활 등 제주해녀의 모든 것과 제주의 전통문화를 망라했다. 박물관 맞은편 숲은 제주 도처가 그렇듯 4·3 학살의 현장이다.
| 해녀박물관 불턱 조형물. /사진=박정웅 기자 |
하나는 일제강점기 해녀들의 투쟁을 기록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4·3과 잇댄 것이다. 해녀들의 항일투쟁 표지석은 옆의 것에 비해 매우 작다. 1932년 1월12일 이 지역 해녀들이 집결해 당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장인 일본인 도사(島司)에게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제시하면 담판을 벌인 곳이 주재소 터다. 이틀 뒤인 14일 청년 운동가들의 검속에 반발해 해녀들이 일본경찰이 맞서 싸웠다. 다른 큰 표지석은 1948년 4월3일과 12월3일, 4·3의 두 차례 교전사를 다뤘다.
| 구좌파출소와 나란한 두 표지석. /사진=박정웅 기자 |
세화리에서 동쪽 방향 해안길을 걸으면 하도리다. 포구에 영어 알파벳으로 쓰인 흰색 하도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쪽으론 시커먼 화산석을 켜켜이 쌓아올린 성곽이 눈에 띈다. 조선 중종 때 제주목사 장림이 왜구를 막기 위해 구축한 별방진(제주도기념물 제24호)이다. 구좌의 서쪽 환해장성(한동리·동복리)보다는 덜 알려진 곳이어서 한번쯤 찾아봐도 좋을 데다. 화산석 성곽이나 매우 튼튼하게 축조대 답성에 안성맞춤이다. 성곽에서 마주한 마을과 들판, 바다 조망은 고즈넉한 풍경을 자랑하다.
| 하도리 별방진과 하도포구의 하도 알파벳 조형물.별방진 바로 아래에는 용천수 샘이 있다. /사진=박정웅 기자 |
| 별방진 성곽서 바라본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
이번 겨울, 느긋한 걸음을 생각한다면 제주의 서쪽 작은 마을을 찾아봐도 좋겠다. 바다와 마주하는 길에서 해녀들의 삶과 투쟁, 4·3의 참상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또 중산간으로 향하는 세화리의 끝쪽에는 오름의 여왕이자 제주 동쪽에서 가장 큰 다랑쉬오름이 있다. 너른 분화구를 따라 걷는 오름 걷기여행도 좋다. 또 오름 아래 4·3의 대표적인 학살 현장인 다랑쉬굴이 있다. 오름 너머에는 천년의 숲 비자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