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가 ‘운명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한진가 남매의 경영권 다툼은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와 반도건설 등의 합세로 대혼란에 빠졌다. 숨겨진 우호지분, 가처분 신청 등으로 판세가 급변하는 탓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남매의 난’, 그 첫 번째 싸움은 이달 27일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결판이 난다. 물론 이 싸움이 단 한번의 대결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본격적인 싸움은 주총 이후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번 경영권 싸움에 동참한 양측의 우호 세력들이 앞다퉈 지분을 늘리고 있어서다. 지난해 4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뒤 1년도 안돼 한진가가 흔들린다. 한진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편집자주>
그래프=김은옥 기자
이달 27일 한진칼 주주총회에선 ‘남매의 맞대결’이 펼쳐지는 가운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진영 간 지분 싸움이 치열하다. 3월 18일 기준 양쪽 진영의 지분차이는 약 1% 안팎에 불과한 상황. 영향력이 큰 의결권 자문사들이 조 회장 쪽으로 지지를 보내는 가운데 2.9% 지분을 갖고 있는 ‘캐스팅보트’ 국민연금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된다.

2.9% 지분은 어디로



국민연금은 지난 6일 위탁운용사가 전량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의 의결권을 회수했다. 이번 한진그룹 주총에서 표를 직접 행사하겠다는 의지다.

남매간 지분 싸움은 박빙이다. 조 회장 측 의결권 지분은 조 전 부사장을 제외한 한진그룹 오너일가(18.30%)와 델타항공(10.00%), 재단 등 특수관계인(4.15%) 등 공식적으론 모두 32.45%다. 이에 맞서 조 전 부사장(6,49%), KCGI(17.29%), 반도건설(8.20%) 등 주주연합은 31.98%를 확보했다.

변수는 있다. 양측이 제기한 두가지 가처분 소송이다. 조 회장 측은 반도건설이 지분 보유 목적을 허위 공시한 것으로 보고 보유지분 8.20% 중 5.0%를 초과한 3.20%에 대해 주식처분명령을 내려달라고 당국에 요청했다. KCGI(강성부펀드)는 한진칼을 상대로 신청한 대한항공 자가보험·사우회·우리사주조합 지분 3.80%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소송을 걸었다.

가처분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지만, 이를 제외하면 공식적으론 양측의 지분율 차이는 1% 이내다. 2.9%의 지분을 쥐고 있는 국민연금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결국 조원태 손 들어준다?


재계에선 국민연금이 결국 자문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조 회장 사내이사 선임안에 찬성을 권고했다. 1년 전 현대차그룹과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주총대결에서도 의결권 자문이 큰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안에 반대를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안 중립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서스틴베스트는 류영재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조현아 전 부사장과 한 배를 탄 강성부 KCGI 대표가 발기인으로 있다.


‘학위 논란 vs 땅콩회항’


양측 모두 약점이 있다. 이 약점은 서로 간의 공격 포인트이기도 하다. 우선 조 전 부사장의 경우 2014년 12월 5일 발생한 소위 ‘땅콩회항’이 아킬레스건이다. 당시 뉴욕발 대한항공 기내에서 땅콩(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를 문제삼으며 활주로로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을 내리도록 한 이 사건으로 대한항공은 치명상을 입었다.
조 회장도 쓰린 곳이 있다. 학사 학위 취소 여부다. 교육부가 2018년 조 회장의 인하대 편입학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인하대에 학위 취소 처분을 통보했다. 조 회장은 미국에서 2년제 힐리어 칼리지 대학을 수료하고 1998년 고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이던 인하대 경영학과에 편입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특별감사 결과 조 회장이 미국대학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학점 이수와 평점 평균 조건을 채우지 못해 수료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하대 졸업 시에도 학사학위 조건에 미달하는 학점을 이수했다고 교육부는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석인하학원은 행정소송 전 단계인 행정심판을 냈으나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가 원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조 회장 쪽은 불복하고 행정소송으로 맞서기로 했다. 학위가 허위일 경우 조 회장은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양측의 경영권 싸움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학위 논란은 조 회장에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일이 될 공산이 크다.

국민연금, 부담 백배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국민의 노후보장 자금인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한쪽 손을 들어주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민간기업 경영권에 개입했다는 비난이 제기될 수 있어서다. 더구나 양측의 표대결이 국민연금 지분 이내에서 결정될 경우 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의결권 자문사들은 사내이사 안건별로 권고안을 내린다. 인물별 자격요건을 보고 권고를 내리는 것이지 누구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가 경영자를 최종 선택한다는 식의 여론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의결권 행사의 판단 기준은 주주가치 제고를 통한 기금운용수익 극대화와 함께 사회적 책임 같은 부분을 수반하게 될 것”이라며 “수탁위에서 국민연금 가입자와 근로자들의 여론을 잘 대변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7호(2020년 3월24~3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