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가난하지만 매우 지혜로운 농부의 딸이 왕비가 된 이야기가 ‘그림동화’에 나온다. 왕이 낸 문제를 슬기롭게 푼 덕분이었다. 

“옷을 입지 말고 그렇다고 벗지도 말고, 말을 타지도 마차를 타지도 말며, 길 위에 발을 대지도 그렇다고 길에서 떨어지지도 말고 나에게 오라.”

코로나19와 미·중갈등, 남북교착 등에 따라 뒷걸음질 치는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도 농부의 딸이 받은 문제풀이처럼 어렵다. 그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경제 문제 핵심은 생산·소비·분배

경제문제는 무엇을 생산해서 누가 소비하며 생산과 소비를 어떻게 분배하느냐로 이뤄진다. 생산, 소비, 분배를 시장기능에 맡기고 국가는 치안, 국방, 외교 등 시장이 담당하기 어려운 분야만 챙기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겨 놓으면 생산이 효율적으로 이뤄져 국가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워지나 독점이 생기고 특정인에게 소득이 집중됨으로써 빈부격차가 확대된다. 생산된 상품이 소비되지 못해 불황이 나타나고 부익부 빈익빈에 따른 갈등이 심화된다.

이런 부작용을 시장 실패라 부른다. 시장 실패에 국가가 개입한다. 소득이 많으면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하는 누진세가 도입되고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금리를 낮추고 재정지출을 확대한다. 이런 케인스식 처방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주인 되는 나라를 만든다’는 공산주의 이념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지배-피지배 계급이 바뀌는 것보다 국가가 나서 기득권층의 재산을 떼어내 사회복지로 활용해 공산주의를 막고 불황도 이겨내자는 취지였다.

케인스 경제학은 냉전시대에 자본주의를 구하고 1970년 초까지 장기호황을 이끌었다. 하지만 엄청난 낭비와 국가채무라는 불청객을 가져왔다. 1·2차 오일쇼크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및 코로나19발 글로벌 경제침체 등을 겪으면서 케인스 처방의 약효는 거의 사라졌다. 철의 장막에 싸여 과대포장됐던 공산주의도 소련 붕괴로 실상이 공개됐다. 중국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워 공산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케인스 경제학의 중국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삼균주의와 농지개혁, 6·25남침에서 자유대한 구했다

지금까지 나온 경제학으로는 현재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21세기 문제에는 21세기형 새로운 처방과 신경제학이 나와야 한다. 이를 모색하기 위해 상해임시정부와 대한민국 건국의 기본이념이었던 삼균(三均)주의를 재조명해보자.

상해임시정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킨 조소앙(趙素昻) 선생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이뤄야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에 완전한 균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삼균주의를 제창했다. 1918년경부터 체계화된 삼균주의는 ‘신지비사’에 나오는 “처음과 끝을 고르고 평평하게 하여 나라를 잘 살게 하고 태평성대를 지킨다”(首尾均平位 興邦保泰平)라는 정신을 이어받아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정부가 지향해야 할 정책의 근본을 밝혔다.

삼균주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시행된 농지개혁의 사상적 기반이 됐다. ▲유상매수 유상분배 ▲농가당 2ha(논·밭 포함 6000평)를 상한으로 ▲농지대금은 연간 생산량의 20%씩 15년 분할상환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농지개혁은 ‘무상몰수(소유권) 무상분배(경작권)’를 내세운 북한의 토지개혁보다 농민이 원하는 것을 훨씬 더 잘 반영했다. 농지개혁으로 ‘내 논 갖기’의 꿈을 실현한 농민들은 6·25 남침 때 자유대한을 지켜내는 사상적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조소앙 선생이 9·28 서울 수복 후 공산군에게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감으로써 삼균주의는 점차 잊혔다. 하지만 삼균주의는 코로나19처럼 끊임없이 진화하는 21세기형 경제·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상으로서 충분한 토대를 갖고 있다. 전통사상과 서구사상의 좋은 점을 접붙이고 짜깁기하는 패치워킹을 통해 문제해결력이 매우 높은 정치경제학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삼균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면서 현실적으로 이루기 쉽지 않은 평등 대신 실현가능성을 한층 높인 균등을 강조한다. 평등이 과정보다는 결과가 같음에 무게를 둔다면 균등은 결과의 같음도 중시하지만 과정의 정당함, 즉 기회가 공평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것에 중점을 둔다. 삼균주의가 실현된 사회에서는 결과적으로 차등이 있어도 과정이 정당함으로 커다란 불만이나 갈등 없이 조화롭게 살 수 있다.

경주 최 부자가 실천한 삼균주의

경주 최 부자는 삼균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가훈을 지킴으로써 거부(巨富)를 13대나 이어왔다.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마라 ▲재산은 만석 이상 늘리지 마라 ▲과객은 항상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 논과 밭을 사지 마라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하라 ▲사방 100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1년 소득 중 3분의2는 과객과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라. 이런 가훈은 조선 후기에 빈발한 민란 속에서도 피해를 거의 보지 않게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재산이 한 곳으로 집중되면 백성이 떠나가고 재산이 골고루 나뉘면 사람이 모인다”(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는 ‘대학’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덕분이었다.

‘그림동화’에서 농부의 딸은 왕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풀었다. “옷을 완전히 벗은 다음 커다란 그물을 몸에 둘렀다. 옷을 벗지도 입지도 않은 상태가 됐다. 당나귀를 한 마리 빌려 그 꼬리에 자신을 두른 그물을 묶었다. 당나귀가 그를 끌고 갔으니 말과 마차를 타지 않았다. 당나귀에 끌려간 그의 몸 가운데 땅에 닿은 것은 발가락뿐이었다. 그는 발을 길에 대지도 떼지도 않았다.”

농부의 딸이 내놓은 답을 보면 참으로 쉽다. 마치 달걀 밑바닥을 깨고 세운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다. 모든 난제(難題)에 대한 기막힌 정답은 이와 비슷하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지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알지 못하는 힘이 다가와 간단명료한 해법을 제시해 준다.

삼균주의는 코로나19로 파탄위기에 빠진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미래지향적 사상이다. 외부에서 강요된 분단으로 인해 싹만 틔우고 시들었지만 통일을 이루고 한국을 이끌어 가는 사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유효기간이 지난 스미스와 마르크스, 케인스 경제학에 매달리는 것은 문제해결을 불가능하게 한다. 가능성이 보이는데 기존 관념에 얽매이는 건 용기가 없는 것이고 역사에 직무유기의 죄를 짓는 일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8호(2020년 6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