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에서 만난 '벤처 1세대'의 혈투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은 흔히 ‘3N’으로 묶인다. 이 중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1990년대 후반 척박한 국내 환경을 딛고 고속성장을 이룬 업계의 양대 산맥이다. 이들 기업을 이끄는 이는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회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다.
벤처 1세대 출신으로 동고동락하며 막역한 사이였던 두 사람은 2015년 엔씨소프트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당시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세계 최대의 게임사 중 하나인 일렉트로닉아츠(EA)의 인수를 위해 연대했다. 하지만 목표가 실패로 돌아간 뒤 경영권 분쟁이 발생, 사이가 급격하게 악화됐고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김정주 회장과 김택진 대표는 서울대학교 1년 선후배 사이(김택진 85학번, 김정주 86학번)라는 점과 국내 대표 게임업체의 창업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성격과 경영방식이 매우 다르다. 김정주 회장은 대외활동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은둔형 경영자까지는 아니지만 외부노출을 자제하는 편이다. 반면 김택진 대표는 적극적이다. 각종 행사에 등장해 게임의 개발 방향에 대해 직접 설명하며 광고에도 출연하며 ‘택진이형’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미래시장 대비책도 차이가 난다. 김정주 회장이 2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반면 김택진 대표는 2011년부터 인공지능(AI) 등 기술확보에 전념했다. 2016년에는 아예 AI센터를 구축했고 올해 4월 말에는 일기예보 기사를 작성하는 AI의 개발에도 성공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성격은 사옥을 보면 정확하게 드러난다”며 “판교의 가장 목 좋은 곳에 보란 듯 위치한 엔씨소프트 사옥은 김 대표의 외향적인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반면 판교의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한 넥슨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다른 회사와 구분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 내부 분위기도 완벽하게 다르다. 엔씨소프트가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반면 넥슨은 깔끔하고 정적이다”고 평가했다.
먼저 웃은 김택진
두 사람은 20년 넘게 각자 기업을 이끌며 꾸준히 성장했다. 공교롭게도 사세가 급성장한 시기가 2018년으로 비슷하다. 2017년 1월1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주당 847엔에 그쳤던 넥슨의 주식은 1년 만에 1640엔으로 두배 올랐다. 같은 시기 엔씨소프트의 주가도 주당 30만4000원(2017년 1월1일 기준)에서 1년 뒤 44만2000원으로 45% 뛰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게임업계를 이끌던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격하게 확산되던 올해 1분기 서로 완전히 다른 성과를 내놨다.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M·리니지2M으로 사상 최대의 분기 실적을 거둔 반면 넥슨은 중국시장에서 횡스크롤액션게임 ‘던전앤파이터’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실적이 줄었다.
엔씨소프트는 1분기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엔씨소프트는 2020년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이 모두 전년동기대비 두배 이상 뛰었다. 매출은 2019년 1분기 3588억원에서 2020년 1분기 7311억원으로 104% 급증했고 영업이익은 2019년 1분기 795억원에서 1년 만에 2414억원으로 204% 늘었다. 당기순이익도 747억원에서 1954억원으로 162% 성장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반면 넥슨은 지난 1분기 매출 9045억원(828억엔), 영업이익 4540억원(425억엔), 순이익 5455억원(499억엔)을 기록했다. 원화로 환산한 뒤 계산하면 순이익은 거의 변동이 없었으나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453억원(5%), 영업이익은 827억원(15%) 줄었다.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매출 감소가 결정타였다.
2019년 한해 절대적인 수치를 비교하면 넥슨이 우위다. 넥슨은 매출 2조6840억원(2485억엔), 영업이익 1조208억원(945억엔), 당기순이익 1조2491억원(1157억엔)을 달성했다. 엔씨소프트는 매출 1조7012억원, 영업이익 4790억원, 당기순이익 3593억원으로 넥슨의 절반 수준이다.
IP vs IP 격돌하는 두 거인
하지만 최근 대세로 자리잡은 모바일시장 개척은 김택진 대표가 김정주 회장보다 두세 걸음 앞섰다는 평가다. 김택진 대표는 PC에서 성공을 거둔 게임 ‘리니지’의 지식재산권(IP)를 모바일에 그대로 이식해 성공을 거뒀다. 올해 1분기 모바일 리니지 형제가 기록한 매출은 5531억원(▲리니지M 2120억원 ▲리니지2M 3411억원)에 달한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앱애니와 시장조사기관 UDC에 따르면 리니지2M은 전세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반 게임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으며 리니지M은 2위를 기록했다.
반면 넥슨은 1분기 모바일에서 170억엔(약 1858억원)을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넥슨에서 서비스 중인 모든 모바일 게임의 매출을 더해도 리니지M 하나를 이기지 못한 것. 수년째 모바일시장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던 넥슨과 김 회장은 올해부터 자체 IP를 활용한 게임을 출시하며 반격에 나섰다.
5월12일 야심차게 선보인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는 누적다운로드 1000만건을 기록,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서 모두 인기차트 1위를 차지했다. 6월10일에는 EA의 ‘피파’(FIFA)를 스마트폰으로 옮긴 ‘피파모바일’로 연타석 홈런을 쳤고 4000만명의 사전예약을 기록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도 출격을 앞두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의 패권을 두고 국내 게임업계 두거인 김정주 회장과 김택진 대표의 승부가 시작됐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9호(2020년 6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