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선수단이 지난 1월1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셀허스트파크에서 열린 2019-20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공격수 피에르 에메릭 오바메양(오른쪽)이 퇴장 판정을 받자 항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명가' 아스날에게 최근 5년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아스날은 잉글랜드 1부리그 13회 우승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통산 20회) 리버풀(18회)에 이어 3위에 올라있는 전통의 강호다. 지난 2003-2004시즌에는 26승12무로 전무후무한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의 신화도 일궈냈다.
찬란했던 과거는 어느덧 옛말이 됐다. 아스날은 지난 2015-2016시즌 준우승에 그친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 이어진 시즌 5위로 떨어져 마치 연례행사같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이후 3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에 얼굴을 비추지 못했다. 그 사이 팀을 22년 동안 이끌던 아르센 벵거 감독이 물러나고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부임했으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곪았던 상처가 이번 시즌 유독 심하게 터졌다. 시즌의 딱 절반인 19라운드까지 치렀을 때 아스날은 5승9무5패 승점 24점으로 11위에 머물렀다. 챔피언스리그는 커녕 유럽대항전 진출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에 이를 정도로 사정이 나빴다. 결국 팀 내 잡음만 이어지던 에메리가 나가고 현역 시절 팀의 주장까지 맡았던 미켈 아르테타가 돌아왔다.


아스날과 아르테타 모두에게 중대한 갈림길이었다. 아스날은 당장의 성적과 팀의 미래를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우선적인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진출이었다. 이를 위해서 수많은 감독 후보가 거론됐다. 이 중에는 카를로 안첼로티(현 에버튼 감독), 막스 알레그리(전 유벤투스 감독) 등 유럽에서도 내로라하는 명장들이 포함됐다. 하지만 구단의 선택은 감독 경험이 일천한 아르테타였다. 적은 이적료 예산을 활용하며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일치했다.

아르테타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아스날에서 은퇴한 뒤 친정팀이 아닌 맨체스터 시티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아왔다.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일컬어지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직을 맡아 수학했다. 하지만 여전히 1군 감독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의문부호가 붙었다. 아르테타로써는 첫 1군 감독 데뷔인 만큼 인상적인 결과를 내야 하는데다가 위기에 빠진 친정팀을 회생시켜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안게 됐다.

미켈 아르테타 아스날 감독은 부임 이후 팀 경기력을 차근차근 끌어올리고 있다. /사진=로이터
아스날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 아르테타 감독 기용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아르테타가 지난해 12월 부임한 뒤 아스날은 올해 2월27일(이하 현지시간) UEFA 유로파리그 32강에서 올림피아코스에게 1-2로 패할 때까지 단 1경기도 패하지 않았다. 리그에서는 전통의 라이벌 맨유를 2-0(1월1일 경기)으로 잡아내며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다.
28경기를 치른 현재 아스날은 9승13무6패 승점 40점으로 9위에 올라있다. 단순 순위만 따지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마지노선인 4위 첼시와 5위씩이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승점 차로만 따지면 48점인 첼시와 단 8점차밖에 나지 않는다. 게다가 첼시보다 한 경기를 덜 치른 만큼 향후 경기 결과에 따라 충분히 추월 가능한 상황까지 올라섰다.


물론 아스날의 잔여 시즌 전망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아스날은 재개 첫 경기를 17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 원정으로 치른다. 이번 시즌 우승이 사실상 무산됐지만 맨시티는 여전히 리그 2위에 올라있는 강호다. 이날 경기에서 패한다면 첼시와의 격차는 여전히 8점에 머무른다. 다음달 8일부터 15일까지는 레스터 시티, 토트넘, 리버풀 등 까다로운 상대를 연이어 만나는 일정도 잡혀있다. 일정만 따지면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쉽게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선수들이 얼마나 아르테타 감독의 신조를 잘 따르느냐에 달려있다. 아르테타 감독은 부임 이후 선수들에게 지속적으로 승부욕과 적극성을 주문해왔다.

단순 수치로만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스날은 20개 구단 중 적극성과 관련된 수치에서 크게 떨어졌다.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시즌 아스날에서 가장 많은 거리를 뛴 선수는 251.34㎞를 달린 공격수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 61위에 불과한 데다 라이벌 토트넘 홋스퍼 중앙수비수인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의 기록에 11㎞ 가량 뒤지는 수치다. 한 팀의 에이스이자 가장 성실하다고 평가받는 선수마저 라이벌팀 중앙수비수보다 활동량이 적은 것이다.

영국 '풋볼 런던'은 이같은 자료와 함께 "아스날 선수들은 리버풀이나 맨시티처럼 높은 수준의 압박을 하는 팀 정도로 경기장을 커버하지 못했다. 이는 모두 아르테타 감독이 이 팀에 구현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스타일이다"라고 전했다. 아르테타의 축구가 온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한 발 더 뛰려는 노력이 필요한 점을 역설한 것이다.

미켈 아르테타 감독(오른쪽 3번째)을 비롯한 아스날 선수들이 지난 1월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뒤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
아르테타 감독이 원하는 '많이 뛰는 축구'가 구현된 경기가 바로 연초 열렸던 맨유전이었다. 당시 아스날 선수들은 이번 시즌 가장 많은 거리인 도합 114.2㎞를 뛰며 맨유를 몰아붙였다. 이같은 투지는 아르테타 부임 후 첫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체 구단들을 상대로 따졌을 때는 이번 시즌 15위밖에 들지 못하는 수치다. 더 많은 활동량, 한 발 더 뛰는 투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스날에게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구단 회생을 위한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다. 이적료 지출에 인색한 구단 특성상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해 거액의 출전 배당금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선수단 개편에 나서는 게 가장 이상적인 과정이다.

아르테타는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철학을 통해 팀이 일정 수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팀의 침체기가 장기화될 지, 아니면 강제적인 '개편' 시기가 계속 뒤로 밀릴 지는 남은 11경기에서 판가름난다. 이제 미래보다는 한 경기 한 경기에 모든 걸 쏟아부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