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 기상청이 있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은 고요하다. 대림과 신길, 상도와 보라매에 둘러싸인 옛 공군사관학교 터(보라매 공원)에는 새나 수풀, 호수에서 작은 파랑이 이는 소리만 있다. 첨단의 슈퍼컴퓨터는, 기상청은 이렇듯 자연 속에서 조용히 우리나라의 기상(氣象)을 읽고 또 풀고 있다.
도시의 시간이 멈춘 듯한 곳에서, 어떤 기자회견이나 시위, 집회가 있었다고 들은 바 없다. 오래된 기사를 들여다봐도 그렇다. 환경부 앞에 진을 친 환경단체는 많았지만, 기상청 앞에서 고성을 지르면서 진입을 시도하거나 "기상청장 나와라"는 주장은 없었다.
날씨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노력해도 틀릴 수 있음을 일정부분 국민들도 알기 때문이다. 악조건 속에서 24시간 교대하면서 예보국을 지키거나 백령도·울릉도에서는 바닷바람을 맞고, 철원·파주 전방 깊숙이 위치한 기상대에서도 정보를 수집하고 만들면서 애쓰는 모습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 장마는 해도 너무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10㎜, 50㎜ 차이면 이해할 수 있지만 아예 틀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댓글이 달렸다. 실제 지난 5일 기상청은 중부지방 최대 500㎜(통상 50~100㎜ 안팎)를 예상했으나 서울 관악구에는 0㎜, 기상청이 위치한 동작구 신대방동에도 1.0㎜ 비만 내려 머쓱하게 됐다.
이번 장마는 막판에 길어지면서 비구름 양상이 국지적으로 바뀌며 좁은 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다. 북극의 고온 현상으로 얼음이 녹으면서 나타나는 이상기후가 나타났고, 중간에 위치한 우랄산맥 바이칼호 부근의 '블로킹'(정지상태 고기압)도 겹치면서 정체전선(장마전선)이 역대 최고 수준 비를 쏟았다.
기상청도 할 말은 많을 것이다. 북극 얼음은 녹아내리는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54도가 넘는 폭염이 일어나는 등 이상기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전지구적 기온이 상승하고 있으며,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날씨가 나타나고 있는데 어떻게 정확한 예보를 하느냐는 말도 할 수 있다.
정부부처로만 봐도 온갖 욕을 독박으로 먹는다고 뾰로통할 수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시설관리공단이 치수(治水) 사업을 못한 것을, 그래서 물이 들어찼고 수해가 난 것을 온통 기상청 탓이라고 말하는 게시물이나 '오보청' '구라(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청' '중계청' 댓글들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상청은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기상청 잘 할 때는 칭찬해 준 적 있느냐'면서 불만을 가질 시기는 아닌 것이다. 노르웨이 기상청이나 미국 기상업체로 망명을 이야기하는 말들 속에는 차가운 이성적 분노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댓글 중에는 '제3국 기상청이 예산이 많아서 날씨를 잘 예보하거나 지형과 위치가 (날씨 예보에) 용이해서 잘 맞히거나 신뢰하는 게 아니다'는 자세한 지적도 담겨 있었다.
현업에서 애가 타는 관련부처 공무원만큼 김종석 기상청장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했는지도 의문이 든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한 브리핑을 직접 하는 동안,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이 부동산 정책현안 기자간담회를 수차례 하는 동안 김 청장은 단 한 번도 대국민 브리핑을 직접 연 바 없다.
강수량이나 기온이 예보와 얼마큼 달랐는지를 사과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접점을 넓히고 방식을 다양화하면서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앞서 내놓은 '기상청 날씨알리미' 애플리케이션은 특보를 빠르게 전파했으나 홍보는 미진했고, 개발 부분 업데이트는 미진한 상태다. '재난문자처럼 지역마다 알람을 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내년에는, 아니 올겨울에 또 이상기후로 특이 기상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 전에 '기상청 예산을 깎아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질타에 직면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기상청 앞 비판 집회·시위도 가능하다. 댓글과 게시물의 분노가 조용한 보라매공원을 뒤덮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2019년 포털업체 '네이버'에서 모바일로 가장 많은 검색이 이뤄진 것은 '날씨'였다. '어차피 날씨 댓글은 악성 비판밖에 없다'는 인식이 '24시간 예보하느라 고생 많다'는 선플로 바뀌기 위해서는 기상청 자성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김 청장이 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