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정치공동체 청년하다 관계자들이 24일 서울 중구 소공로 한진빌딩 앞에서 '과로사 택배 노동자 추모 대학생 집회'를 열고 택배 노동자 처우개선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2020.10.24/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지난 2017년부터 매년 1~2차례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들을 취재했다. 기사들은 그때마다 절박하게 호소했다.
"말 그대로 '과로'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배달을 다 마치면 밤 12시가 넘는다." "딸 생각에 견딘다."

언론은 택배기사들의 이 같은 목소리를 담아 매년 보도했다. 상당수 시민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사실상 없었다. 올해만 택배기사 14명이 과로나 생활고 등의 이유로 숨을 거뒀다.

택배기사 대부분은 물량이 아닌 지역을 기준으로 대리점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한다. 자신이 송파구를 맡았다면 계약에 따라 그 지역에 할당된 물량을 모두 분류·배달 처리해야 한다. 100건이면 100건, 1000건이면 1000건 모두 감당해야 한다. 처리하지 못한다면 계약 해지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진택배 기사 A씨(30대)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새벽 4시28분 남긴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는 게 기사들의 말이다. A씨는 담당 지역에 할당된 물량을 반드시 처리해야 했다.


"집에 가면 5시 밥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 못자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물건 정리해야 한다"는 그는 끝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동생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형의 죽음이 과로사가 맞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원인 가운데 하나로 '특수고용자'(특고)라는 독특한 신분이 꼽힌다.

'특고'인 택배기사들은 노동자인 동시에 '1인 사업자'다. 기사들은 사업자와 도급 위임 계획을 체결해 분명 '1인 사업자' 지위를 갖지만 실제로는 사업자에 종속돼 일을 할 수밖에 없다. 1인 사업자라면 처리 물량을 스스로 조절해야 하는데 '지역'을 기준으로 계약을 체결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고'인 기사들에게 본사가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예컨대 택배기사가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한 미담 사례가 확인되면 그 기사를 업체 소속으로 소개하며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 택배 기사들을 앞세워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홍보 활동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예민한 문제가 발생하면 본사는 자신들과 무관한 사안이라며 책임을 슬그머니 회피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2018년 말 택배기사들의 노조 인정 요구가 확산하자, 국내 주요 택배업체 대표는 당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해당 대표는 업체 본사→전국 수천개 대리점→택배기사로 계약 관계가 이어진다는 논리를 펼쳤다. 본사가 '특고'인 택배기사와 직접적으로 계약을 맺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노조를 인정해 달라'는 기사들의 민감한 요구를 외면하고 싶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기사들은 "본사는 필요할 때만 택배기사를 자신의 업체 소속이라고 소개하고, 무슨 일이 터지면 '특고'란 점을 강조하며 기사와의 선긋기를 한다"고 꼬집는다.

CJ대한통운은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된 택배분류작업에 4000명을 투입해 기사들의 업무 부담을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자사 기사를 포함한 택배기사 13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나자 이런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택배산업 현장의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지만 씁쓸한 뒷맛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왜 누군가 죽음을 맞고서야 대책이 마련되는 것일까. 현장에서 만난 택배기사들은 "사연 없는 기사는 없다"고 했지만, 그 어떤 사연도 죽음보다 비극적일 수 없다. 죽음 이외에는 대책을 마련하게 할 방법이 도저히 없는 것일까.

내년 택배기사를 취재했을 때 "근로조건이 조금이나마 개선됐다"는 얘기를 진심으로 듣고 싶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