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지분 팔고 배당 늘려 충당
재계에서는 삼성이 상속세 문제를 처리한 후에 남은 과제를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등 유족들이 내야 할 상속세는 11조원이다. 금액만으로도 눈길을 끌지만 정작 핵심은 상속세 마련 과정에서 계열사들의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 오너 일가 재산의 상당 부분은 주식으로 묶여 있어 11조원의 상속세를 현금으로 내기는 어렵다.
이 부회장 등은 상속세 연부연납 제도를 이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이자 1.8%를 적용해 1차로 전체의 6분의1 금액을 낸 뒤 나머지 6분의5를 5년간 지불하는 방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고 구본무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상속세 9215억원을 이 같은 방식으로 내고 있다.
하지만 상속세를 최대 6등분을 해도 매년 1조6000억원가량의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수 일가가 상장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총 2조7716억원에 이른다. 유족들이 이 돈을 물려받으려면 최고 세율에 해당하는 50%(상속가액 30억원 이상)를 세금으로 내야 해 상속인들이 실제 받는 돈은 절반인 9000억원 수준이다. 전체 상속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이 부회장은 계열사 보유 지분 일부를 팔아 자금을 마련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3남매가 공동으로 지분을 보유한 삼성SDS가 매각 대상으로 지목된다. 삼성SDS 시가총액은 14조54억원으로 자금 마련에 적정 규모인 데다 지배구조 흐름에서 핵심 역할은 하지 않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는 분석에서다. 이 회장 부자의 지분을 모두 팔면 1조8000억원 선의 재원 확보가 가능하다.
삼성생명 지분을 팔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룹 지배구조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삼성생명 주식을 전량 매각할 경우 2조6000억원 안팎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현금에 더해 주식까지 매각해도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은 최대 6조원이다. 이 때문에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배당을 늘려 재원 마련과 이 부회장의 체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일부 상속과 함께 잔여 지분을 삼성공익재단에 넘기는 방식도 거론된다”고 평가했다.
‘삼성생명법’ 통과땐 지배구조 흔들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뒷받침할 삼성의 지배구조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5.01%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한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사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7.4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5.60%, 5.6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를 갖고 있다. 오너 가의 삼성전자 직접 지분율은 5.8%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 등 그룹사 지배권을 행사하는 구조다.
시장에서는 이 회장의 삼성전자(4.18%)와 삼성물산(2.88%) 지분을 이 부회장이 물려받으면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큰 틀은 더욱 안정화될 것으로 본다.
은경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지금 당장 전면적인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며 “삼성생명의 지분은 약 2조6000억원 내외로 금액 자체는 삼성전자 지분 대비 크지 않으나 삼성전자 대주주 지분이기에 외부 매각 가능성보다는 오너 3세들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변수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이다. 여당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통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을 강제로 낮추려 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중 20조원 이상을 매각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결국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에 경영권을 행사하던 이 부회장의 지배력도 약화된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던 만큼 이번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삼성생명이 오랜 기간 적법하게 보유하던 주식을 강제로 매각하는 것은 주주평등권과 재산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급진적으로 지배구조를 흩어놓으면 기업이 공중분해 될 우려가 있는 만큼 정부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 꼬리표 승계 방해할라
사법 리스크는 지배구조를 정리하고 뉴 삼성 시대를 펼치는 데 걸림돌이다. 당장 다음달 9일 파기환송심 관련 공판 준비기일이 예정돼 있고 이르면 연내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곧바로 내년 1월 예정된 승계 의혹 사건에 대한 공판 준비기일을 시작으로 재판 일정은 줄줄이 이어진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승계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불법행위 의혹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 우려된다. 이를 통해 이 부회장이 부도덕한 경영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승계를 매듭짓지 못한 채 재판에서 실형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경영 활동 마비가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서도 재판 준비에 또다시 시간과 비용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2016년 말부터 수년째 수사·재판을 받아온 이 부회장이 4년째 사법 리스크에 휘둘리며 삼성의 대규모 인수·합병(M&A)과 투자는 끊긴 상태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미국 엔디비아와 한국 SK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는 M&A를 통해 미래 전략 짜기에 분주하다”며 “삼성은 과도한 세금으로 재투자 여력이 줄어든 데다 재판이라는 다른 장애물에 눌려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