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깜짝 흥행과 호평의 이유는 영화가 가진 희망적인 메시지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극장가가 침체되면서 신작들의 흥행 성적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지 않았지만, 탁월한 만듦새와 시의성 있는 감동 요소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흥행을 이뤄낼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지난 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집계에 따르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지난 5일 누적관객수가 107만2266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로써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코로나19로 극장가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담보'와 더불어 9월 이후 하반기 극장가에서 100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가 됐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 입사 8년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 회사 토익반을 같이 듣는 세 친구가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로 고아성 이솜 박혜수가 출연했다. '전국노래자랑' '도리화가'의 이종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자신들을 나름 커리어 우먼이라 생각하는 자영(고아성 분), 유나(이솜 분), 보람(박혜수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 누구보다 열의를 갖고 있지만 고졸이라는 이유로 유니폼을 입은 채 사무 보조 업무를 하거나, 남자 상사들의 커피를 타주고 구두까지 닦아주며 담배 심부름도 한다. 그러다 이들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로 진급할 수 있다는 것.
세 동료들은 출근 전 영어토익반을 다니며 대리 진급을 꿈꾼다. 영화에서 '영어토익반'은 단순 시대상을 묘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1990년대 중반, 고졸 학력의 여성들이 사회에서 대놓고 차별받는 과정을 드러내는 장치다. 승진을 꿈꿀 수 있는 길은 단순히 토익 시험 600점을 넘는 것으로, 출근 시간보다 더 이른 아침에 많은 고졸 학력의 여성들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뭉클하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의 요지는 토익 600점을 넘기기 위한 과정이 아닌, 삼진그룹 공장의 하수구에서 페놀이 방류되고, 이를 목격한 자영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연대하며 내부 고발에 성공하고 회사까지 지키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정의와 양심이라는 가치에 반응하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서사가 그려지지만, 결과적으로는 연대(連帶)의 힘과 애사심에 방점을 찍게 되면서 기성세대의 집단주의적인 조직문화는 현실과 다르게 다소 낭만적으로도 표현된다.
기성세대가 이뤄놓은 조직문화에 회의적인 데다 경쟁 사회에 체화되며 개인주의화 돼가고 있는 신규세대까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전한 '연대' 판타지의 감동이 닿았다는 점은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자영이 극 말미 "위 아 그레이트(We are great)"라며 '우리'를 강조하는 장면에선 감동으로 눈시울도 붉어진다. 페놀 방류 사건 고발을 위한 연대로 엮인 여성들이지만, 영화는 그 사건 이면에 기업 매각 서사까지 드러내면서 주인공 뿐만 아니라 대졸 혹은 남성 사원들까지 회사를 지키기 위해 이들과 함께 똘똘 뭉치게 되는, 더 거대한 연대를 향해 나아간다.
'연대'는 분명 기성세대가 때때로 자신들이 옳다며 이뤄냈던 그 시절 공동의 선이지만, 신규세대에겐 여전히 회의적인 가치고 낡은 의식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그려진 연대 판타지는 분명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리스크가 있었지만, 코로나19라는 특수적인 상황 속에 대다수에게 감동 코드로 다가왔고, 젊은 세대 다수가 이용 중인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과 호평을 이뤄냈다.
그 시절 여성 회사원을 상징하는 인물인 자영 외에도 2020년의 신규 세대의 마인드에 가까운 유나의 모습도 함께 그려지면서 가치 충돌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도 젊은 관객층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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