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이럴 거면 뭐 하러 오라고 했습니까?
지난달 19일 최영섭씨(40·가명)는 해고됐던 회사에 복직돼 다시 출근길에 올랐다. 회사는 '경영상 이유'로 해고가 정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영섭씨가 '부당해고'됐다고 판단했다. 지노위는 복직 명령을 내렸고 회사가 이를 인정해 출근을 하게 됐다.
그런데 출근 직후 상사는 최씨를 불러 '이날부로 다시 해고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복직해 출근한 지 2분 만에 또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영섭씨는 그날을 떠올렸다. 회사가 이야기한 해고 명분은 1차 해고 때와 똑같았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고 최씨가 맡고 있던 사업 부분이 매각되면서 배정해 줄 일도 없다는 논리였다.
지난 8월 1차 해고된 최씨는 다음달인 9월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2018년 9월 인공지능(AI) 관련 신사업 담당자로 A사에 입사한 최씨는 올해 6월까지 이틀에 한번 꼴로 대표이사에게 올리는 보고서를 만들고 400회가 넘는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회사가 '근태가 불량했다'리며 정리해고 대상자가 됐다고 하니 억울했다.
지노위는 회사가 해고를 위해 진행했다는 평가에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없었다고 봤다. 또 회사가 주장하는 '경영상의 어려움'도 매출액 등 경영 지표를 봤을 때 정리해고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더불어 지노위는 회사가 해고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해고를 위한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지노위 판정을 인정해 복직과 밀린 임금의 지급 명령을 이행하겠다고 했음에도 다시 똑같은 이유로 해고를 하는 것은 최씨에게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뀐 것이 하나 있었다. 해고 당시만 하더라도 1개였던 회사가 4개로 쪼개지면서 각 사업장들이 '5인 미만 사업장'이 된 것이다.
근로기준법 23조는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만약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하면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이 조항의 적용 예외 대상이라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구제 신청을 할 수 없다.(관련기사: 쪼개고 속이고…"5인 미만을 맞춰라")
A사는 최씨가 재직 당시 16명을 상시 고용하는 회사였으나 구제신청 과정이던 9월초 회사가 4개 회사로 분할됐다. 기존의 직원들이 신규 법인에 대표가 됐고 각 회사에 2~4명씩 근무하는 구조가 됐다. 분할된 회사들은 기존의 회사에서 300m 내외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최씨의 사건을 대리하는 하은성 권리찾기유니온 노무사는 회사가 최씨의 해고와 추후 노무관리의 편의를 위해 회사를 쪼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회사 운영은 1개 회사처럼 이뤄지고 있지만 노동관계법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 사업장을 명목상 쪼갰다는 것이다.
하 노무사는 실제 A사가 현재 쪼개진 회사에게 용역비를 주는 방식으로 임금과 사무실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고 직원들도 A사에서 파견이 돼 일을 하고 있다며 1개의 회사를 분할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A사 측은 '코로나로 회사의 경영이 악화됐고 최씨가 담당했던 AI관련 신사업도 종료돼 일이 없는 상황에서 고용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더불어 회사를 분할한 것에 대해서도 '사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독자생존의 길을 찾아보기 위한 것이지 해고를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번 사례를 두고 하 노무사는 "원직 복직 당일 해고를 당한 것은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할 수 없다는 법의 허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쪼개진 사업장에 남아있는 직원들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돼 근로조건이 악화될 수 있고 특히 대표직을 맡아 노동자성을 잃게 된 직원들의 고용안정성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 노무사는 최근 일부 노무법인들이 노동관계법의 제약을 피하는 방법으로 기업들에게 사업장을 쪼개는 방식의 컨설팅을 해주는 것이 만연해 있다며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이 마치 기업들의 법적 책임을 회피시켜주는 '마법 요술봉'처럼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렇게 기업들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 가짜 5인 미만 기업들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회사를 5인 미만으로 위장 운영을 하다 노동자의 신고로 임금체불, 연차 미지급, 부당해고 등이 확인되면 해당 내용에 대해 처벌할 수 있지만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위장 운영한 것 자체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여기에 더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차별을 두는 현행법 제도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당사자인 최씨 회사는 자신에게 시킬 일이 없어 복직시킬 수 없다는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지노위 심판 과정에서 회사 대표께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기 위해 회사를 4개로 분할했다고 했다"라며 "제가 신사업 기획을 맡았는데 이럴 때 신사업 기획자를 해고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전했다. 현재 최씨는 회사가 부당해고를 했다며 고용노동청에 다시 고발한 상태다.
한편 A사는 콘퍼런스 콜, 화상회의, 웹 컨퍼런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특히 A사는 상장사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등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전화 회의인 콘퍼런스 콜 분야에서 국내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