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1922~2020) 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고(故)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965년 말 라면 사업 추진을 놓고 형과 갈등을 빚으면서 롯데그룹을 떠나 롯데공업을 세웠다. 1978년 롯데공업의 사명을 농심으로 변경하면서 롯데와는 완전히 결별했다.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면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고한 경영 철학을 밝혔다.
신 회장은 자신을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그는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고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일본의 기술을 도입해 수월하게 라면을 개발할 수도 있었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내기 위해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뒀다.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는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 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돼 있다. 신라면에는 본인 성씨인 '매울 신'(辛) 자를 넣어 대히트를 쳤다.
농심 창립 이후 ‘라면’과 ‘스낵’만 고집해온 신 회장의 뚝심 경영은 연 매출 2조6000억원, 세계 5위 라면 회사를 일궈냈다. 현재 신라면과 짜파게티는 국내 라면 시장에서 점유율 1·2위를 달리고 있다. 이중 신라면의 수출액은 4400억원을 넘어섰다.
국민 라면으로 등극한 신라면은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신 회장은 해외 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신라면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게 팔리고 있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채널에서는 물론 주요 정부 시설에 입점해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실제로 신라면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게 팔리고 있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채널에서는 물론 주요 정부 시설에 입점해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 회장의 라면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음식에서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국민들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