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관·기업은 암호화폐가 인터넷과 블록체인을 통해 새롭게 조성될 경제적·금융적 가치에 대한 담보물이 될 것으로 평가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암호화폐는 잘못된 투자'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마땅한 규제 방안을 내놓지 않아서다. 매일 10조원 이상 거래가 이뤄지는 암호화폐시장에 정부의 명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화(KRW) 거래를 지원하는 14개 거래소의 최근 24시간(하루) 거래대금은 약 220억달러(약 24조원)로 지난 23일 코스피 거래액 15조6532억원보다 10조원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부터 20% 세금 적용… 거래소 신고 강화
정부는 세금규제 카드를 꺼냈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암호화폐를 팔아 벌어들인 돈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연 250만원을 넘으면 20% 세율로 분리 과세하도록 규정했다.
지방세를 포함하면 실제 세율은 22%다. 시행은 내년 1월1일부터다. 예를 들어 2022년 한해 암호화폐 소득이 400만원이라면, 2023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시점부터 250만원의 공제액을 뺀 150만원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정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미국, 영국, 프랑스는 암호화폐 관련 소득을 '자본소득'으로 분류해 세금을 떼고 있다.
일본은 '잡소득', 독일은 '기타소득'으로 본다. 소득세법에 따라 암호화폐거래소들은 내년 1월부터 이용자의 거래 명세서를 분기별, 연도별로 과세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자금 세탁과 사기, 불법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이다. 오는 6월까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10개 부처가 진행한다. 하지만 투자자 피해를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금융당국은 은행에 암호화폐거래소의 검증을 요구했다. 최근 개정된 특정금융거래법상(특금법) 암호화폐 거래소는 은행에서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 계좌를 받아 영업하고 은행은 해당 거래소가 안전한지 등을 검증해야 한다.
현재 은행과 실명 계좌를 개설해 영업하는 곳은 업비트(케이뱅크), 빗썸과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등 4곳뿐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관리책임을 은행 등에 떠넘기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은행 관계자는 "현행법 안에서 암호화폐 관련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하는데 은행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중소 암호화폐거래소의 실명계좌 제휴 문의가 이어지고 있으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전부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인 투자자 계좌 늘어나는데… 거래소 폐쇄 우려
은행권에 따르면 케이뱅크의 신규 가입자는 이달 들어 18일까지 108만여명 늘었다. 3월 말 기준 391만명에서 약 20일 만에 499만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암호화폐거래소인 업비트를 통해 코인을 사고 팔려면 케이뱅크 계좌를 열어야 하기 때문에 신규 가입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거래소와 실명 확인 계좌 제휴를 맺은 다른 은행들도 신규 계좌 개설 건수가 훌쩍 늘었다. 빗썸·코인원과 코빗에 각각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하는 농협은행과 신한은행에서는 이달 들어 16일까지 24만9940건의 개인 입출금 계좌가 새로 개설됐다.
하루평균(영업일 기준) 2만828건으로 1년 전(9266건)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반면 암호화폐거래소와 제휴가 없는 하나·우리은행에서 같은 기간 새로 개설된 입출금 계좌는 절반 이하(하루평균 8946건)에 그쳤다.
금융위원회가 암호화폐 사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드러내면서 은행들은 암호화폐 투자용 실명계좌 협상에 미온적이다. 은행연합회가 실명계좌 발급 및 업무방법에 대한 표준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최종 가이드라인 공개가 늦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해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암호화폐거래소 규제와 은행의 책임으로 미루기엔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어서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한국블록체인학회장)는 "은행이 해외거래 의심사례의 기준으로 삼는 외국한거래법은 암호화폐 거래 목적의 해외 송금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신고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며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 마련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