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유예하는 방안을 전격 지지하고 나서면서 지재권을 둘러싼 각국 입장에 변동이 생기는 분위기다. /사진=로이터
미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지재권) 보호를 유예하는 방안을 전격 지지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지재권을 둘러싼 각국 입장에 변동이 생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당초 유예 반대 입장이었던 제약강국 미국이 찬성으로 발을 돌리면서 미국과 함께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나라들이 입장 재정리에 들어갔다. 

각국의 최종 입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독일과 스위스는 기존의 반대 주장을 굽히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유예 찬성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6일(한국시각) 기자회견에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논의 중인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 방안에 대해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긍정했다. /사진=로이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6일(한국시각) 기자회견에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논의 중인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 방안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성명을 내고 “미국 정부는 지재권 보호의 필요성을 굳게 믿고 있지만현 팬데믹을 끝내기 위해서는 코로나19 백신의 보호를 유예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미국의 지재권 유예안 찬성 입장은 확실해졌다.

앞서 미국 정부는 화이자, 모더나와 같은 자국 제약사의 이익을 고려해 지재권 보호 유예안에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미국의 입장 변화에 화답한 대표적인 곳은 유럽연합(EU)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지난 6일 "EU는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유예안 논의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EU는 다국적 제약사를 보유하고 있는 회원국들을 위해 지재권 유예 반대 입장에 섰다. 반면 회원국 중 프랑스, 이탈리아는 미국의 지재권 유예 지지에 힘을 실었다.

지재권 유예 반대하고 나선 독일과 스위스

독일과 스위스는 지재권 유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은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 /사진=로이터
하지만 독일은 지난 6일 성명을 내고 기존 반대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독일 정부 대변인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백신 공급을 지지하지만 백신 생산에 있어 가장 큰 제약은 지재권이 아니라 생산량 증가와 품질 보증”이라면서 “지재권 보호는 혁신의 원천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U회원국이 아닌 곳 중에서는 스위스가 눈에 띄었다. 

스위스 연방 국가경제사무국(SECO)은 “WTO의 틀 안에서 해결책을 논의하는 데 열려있다. 스위스는 이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새로운 제안을 평가할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고려하고 있는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 많은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각국의 입장이 이 같이 극명히 갈리는 데에는 ‘백신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백신 개발에 실패했다. 반면 독일 기업인 바이오엔테크는 미 제약사 화이자와 함께 백신을 개발했다.

이외에도 독일의 제약회사 큐어백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에 이어 세 번째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 생산이 임박한 상태다. 이르면 다음주에는 이 방식을 이용한 코로나19 백신 임상 3상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스위스 또한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로슈를 보유하고 있다. 노바티스는 큐어백이 개발 중인 백신을 지원했다. 로슈의 경우, 미국 생명공학회사 리제네론과 함께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항체 치료제)가 임상 3상에서 환자의 입원 및 사망위험을 감소시킨 효과를 확인한 상태다 

즉 독일과 스위스 모두 자국 제약사의 이익 침해를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입장 선회로 백신 지재권 유예에 청신호가 들어왔지만 독일·스위스와 같은 WTO 회원국들이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유예 문제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백신 특허권은 WTO의 트립스(TRIPs, 무역 관련 지재권에 관한 협정) 합의에 의해 보호 받는다. 이에 대해 WTO가 유예 결정을 내리려면 가입국 164개국의 만장일치 찬성을 받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