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 상승세가 다시금 거세지고 있다. 안정세를 찾아가나 싶었던 집값에 ‘규제 완화’ 기조를 내걸었더니 불쏘시개가 돼 되레 집값이 다시 들썩인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 지역을 규제하니 호가가 오르고 주변 지역으로 매수세가 옮겨 붙기 시작했다. 산 넘어 산이다. 규제 완화와 집값 안정은 상충할 뿐 양립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2·4 공급대책) 발표 후 상승폭이 둔화됐던 서울 집값이 5월 이후 다시 오름폭을 키웠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 주택가격 동향조사’에 따르면 5월 서울 주택 종합(아파트·단독·연립주택 포함) 매매가격 상승률은 전월(0.35%)보다 0.05%포인트 상승한 0.40%로 나타났다. 2·4 공급대책 발표 후 3월 0.38%와 4월 0.35% 등 두 달 연속 상승폭이 줄었으나 다시금 상승 곡선이 커진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서울에선 규제 완화 기대감이 있는 재건축 단지 위주로 매수세가 증가하며 가격 상승폭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하니 주변까지 ‘들썩’
4·7 재·보궐선거로 서울시에 재입성한 오세훈 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규제 완화 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당선 후 재건축 기대감으로 서울시내 곳곳에선 호가 폭등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서울시는 4월27일 투기 수요 차단을 목적으로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사업 지역인 압구정·여의도·성수·목동 등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이에 따라 토지 용도별로 해당 지역 일정 규모 이상 토지거래는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추가 지정 후 해당 지역 거래 건수는 뚝 떨어졌다. 하지만 수요가 여전해 호가 상승이 이어지고 있고 매매가격도 높아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17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104.8로 지난주(103.5)보다 1.3포인트 상승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7차 245.2㎡(전용면적)는 지난달 조합 설립 인가 직전 80억원(11층)에 거래되며 6개월 전 67억원(9층)보다 매매가격이 13억원이나 껑충 뛰었다. 압구정동 신현대12차 183.41㎡ 호가도 70억원선으로 지난 1월 거래가에 비해 약 20억원 상승했다.
압구정·여의도·성수·목동 등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자 ‘풍선효과’가 나타나며 강북 대표 재건축 추진 지역인 노원구의 아파트값 상승률엔 힘이 붙었다. 5월 넷째 주 0.21% 오른 노원구는 서울시내에서 7주 연속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초구 역시 압구정동 규제 여파로 매수세가 이동하며 직전 4주 연속(0.13%→ 0.15%→ 0.19%→ 0.20%) 상승폭이 커진 데 이어 5월 넷째 주에도 상승률 0.18%를 나타냈다.
지난해 청담동·삼성동·대치동·잠실동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후 거래절벽 상황에서 가격이 올랐고 인근 지역 집값이 과열되기도 했다. 유사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형국이다.
오세훈, 재개발 활성화 ‘규제 완화’… 저가주택 가격 상승 우려?
오 시장은 집값 급등의 핵심 요인이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한 주택공급’이라고 판단해 주택공급을 본격화하는 ‘재개발 활성화를 위한 6대 규제 완화 방안’을 내놓았다. 5월26일 발표한 이 방안에선 2025년까지 24만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6대 방안은 ▲주거정비지수제 폐지 ▲공공기획 전면 도입으로 정비구역 지정 기간 단축(5년→2년) ▲주민동의율 민주적 절차 강화 및 확인 단계 간소화 ▲재개발 해제 구역 중 노후지역 신규 구역 지정 ▲2종 7층 일반주거지역 규제 완화로 사업성 개선 ▲매년 ‘재개발구역 지정 공모’로 구역 발굴 등이다.
주목할 것은 발표 이전부터 빌라 등 비아파트 주택 가격 상승과 거래량 급증 움직임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서울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4월 서울시내 다세대·연립주택 매매 거래량은 5330건으로 전년 동기(4184건)보다 1146건(27%) 증가했다. 2월 4433건과 3월 5096건 이어 3개월 연속 늘었다.
KB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연립주택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해 8월 3억113만원으로 처음 3억원을 넘긴 후 9월 3억300만원과 12월 3억1946만원 등으로 올랐다. 올 들어서도 ▲1월 3억2207만원 ▲4월 3억2648만원 ▲5월 3억2802만원 등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오 시장 정책에 따라 ‘주거정비지수제 폐지’로 재개발구역 지정 문턱이 낮아지자 서울시내 저가주택 가격 상승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그만큼 서민 주거 불안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오 시장은 재개발구역 지정을 위한 후보지 공모일을 권리산정 기준일로 고시하고 고시일 이후 투기세력의 분양권 취득을 위한 지분쪼개기는 차단하는 등 투기방지 대책도 병행해 시장 안정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대책의 실효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노후 주거지 정비 사업 진입 문턱이 낮아져 재개발 시동을 거는 지역이 증가한다면 사업 기대감이 선반영돼 노후 단독·다가구나 다세대·빌라 밀집지역 부동산 매매가 상승이 현실화되고 갭투자 형태의 거래가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아파트에 비해 덜 올랐던 서울 중저가 주거지의 비아파트 상품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며 “서민 주택시장의 가격 불안이 가시화될 수 있어 (이후 부동산 정책에서) 개발과 투기 수요 억제를 동시에 담보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주어질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아파트에 비해 덜 올랐던 서울 중저가 주거지의 비아파트 상품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며 “서민 주택시장의 가격 불안이 가시화될 수 있어 (이후 부동산 정책에서) 개발과 투기 수요 억제를 동시에 담보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주어질 전망”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