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영찬

◆기사 게재 순서
①공급망 주도권 전쟁에 韓기업 비상
②리쇼어링 기업, 美 1300개 vs 韓 20개… “우호적 경영환경 필요”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가 공급망 재편에 박차를 가하면서 글로벌 정세가 요동친다. 공급망 재편의 핵심은 생산기지를 자국에 유치해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핵심 전략으로는 해외로 나간 기업을 자국내로 재유치하는 ‘리쇼어링(reshoring)’이 꼽힌다.
한국은 2014년 리쇼어링 관련법을 제정하고 지난해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미미한 실정이어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국내 복귀 기업 24개뿐

한국은 2013년 8월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유턴법’을 제정하고 그해 12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국내에 실제로 복귀한 기업 수는 미미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턴법 시행 첫해인 2014년 20개 기업이 국내에 복귀했고 2015년엔 3개로 줄었다. 2016년은 12개기업, 2017년엔 4개 기업이 돌아오는데 그쳤다.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는 2018년 ‘유턴기업 종합지원대책’을 마련한 뒤 2019년과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기존 유턴법을 개정해 국내복귀 인정범위와 인센티브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해외사업장 생산량 축소 기준을 기존 50%에서 25%로 하향하고 유턴법 적용 대상에서 원천 배제됐던 외국인 투자기업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소재·부품·장비 관련 핵심전략기술이나 국가핵심기술로 확인받는 기술을 활용한 공급망 핵심품목은 해외사업장 축소 요건을 아예 면제하는 등 파격적인 조치도 이뤄졌다.


대통령까지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선도형 경제 전환의 핵심전략으로 리쇼어링을 꼽으면서 “한국기업의 유턴은 물론 해외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지원에도 실제 리쇼어링 기업 수는 여전히 적다. 정부가 제도 강화를 본격화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도별 리쇼어링 기업 수는 2018년 9개, 2019년 16개, 2020년 24개에 그친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초 발간한 ‘리쇼어링 추진전략과 과제’ 보고서에서 “유턴법 시행 이후 한국의 유턴 현황은 애초에 기대했던 성과에 미치지 못했고 특히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 위주로 유턴이 이뤄져 확장성이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증가하고 있다”며 “유턴 관련 정책의 개선에 대해서도 기존보다 효과적인 방안들은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유턴 기업이 소폭이라도 늘어나는 추세인 점은 고무적이지만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서는 규모가 현저하게 뒤처진다는 지적이다. 미국 기업들의 국내 복귀를 지원하는 단체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미국 리쇼어링 기업 수는 2010년 95개에서 2013년 432개로 늘었다가 2016년엔 267개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17년엔 다시 624개로 급등한 이후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는 지난 9월 보고서에서 올해 미국의 리쇼어링 기업이 1334개에 이르고 이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가 13만8110개에 달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정책 미비보다 기업환경 악화가 문제

반면 한국은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더 많다. 2014년부터 2020년 9월까지 연평균 국내 복귀기업 수는 12개였지만 같은 기간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해외에 설립된 신규법인 수는 연평균 3201개로 267배에 달했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제도의 추가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손동희 국회예산정책처 경제산업사업평가과 예산분석관은 ‘국내복귀기업 관련 주요 정책 분석’ 보고서에서 “동반복귀 측면에서 대기업의 유턴이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으므로 실질적인 국내복귀 성과확대를 위해 대기업의 국내복귀 활성화를 위한 정책개선방향을 검토해야 한다”며 “국내복귀 요건을 폭넓게 인정하고 해외사업장 축소보다는 국내투자와 고용확대에 보다 초점을 맞추도록 개편해 국내복귀에 따른 파급효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정비에 앞서 기업에 우호적인 경영환경을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한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은 “지엽적으로 규제 몇개를 풀고 인센티브 지원책을 조금 늘린다고 해서 기업들이 돌아오진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대립적인 노사 문제, 해외에 비해 높은 법인세, 기업과 경영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등 전반적인 문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리쇼어링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다양한 국내 규제 법안들이 기업들의 경영을 까다롭게 한다”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등 잇단 규제로 인해 기업 입장에선 도저히 국내로 복귀할 마음이 안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기업에 대한 환경과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은 정부의 몫인 만큼 단순한 세제지원을 넘어 기업의 경영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도 “각종 규제 상황도 좋지 않은 데다 형사처벌 위험도 증가했고 노동비용까지 급격히 상승해 전반적으로 기업들의 사업 환경이 악화됐다”며 “떠난 기업을 돌아오도록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국내에 있는 기업이 해외로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부터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