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조윤형 기자 =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씨가 23일 지병으로 숨졌다. 향년 90세.
전 씨는 이날 오전 8시55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앞서 전 씨는 지난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11기로 입교, 1955년 육사 졸업과 동시에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61년 서울대학교 학생군사교육단에서 교관으로 일하던 중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전 씨는 육사생도들을 동원해 군부 지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로 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전 씨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에 발탁됐다.
박 전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노태우를 비롯한 육사 동기들을 중심으로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했다.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된 전 씨는 같은해 10.26 사건 이후 계엄법에 의거해 보안사령관으로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됐다. 당시 자신이 이끌던 하나회를 통해 12.12 군사반란으로 군을 장악했으며, 하나회 인사들은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비상계엄을 전국 확대했다.
이때 정권은 정당 및 정치활동 금지·국회 폐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의 조처를 내리고 학생·정치인·재야인사 등 2699명을 구금하기도 했다. 또 이에 맞선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해 실권을 장악했다.
전 씨는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 이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어 7년 단임 대통령제가 담긴 새 헌법을 공포,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2대 대통령 선거(간접 선거)에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출범했다.
1985년 총선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터져 나왔고,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해 민주화의 열망이 더욱 거세졌다. 전 씨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으나, 이는 오히려 역풍이 돼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결국 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인 노태우가 6.29 선언을 발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진행했다. 대통령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한 전 씨는 1988년 11월 23일 부인 이순자 씨와 함께 내설악 백담사로 들어갔다.
이후 1995년 문민정부에 의해 노태우와 함께 구속기소됐다. 죄목은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불법 진퇴, 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 상관살해, 상관살해미수, 초병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이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 씨와 노 씨에 대한 사면 여론이 형성, 결국 대선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전 씨는 사면복권됐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전 씨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한 서울고법 판결을 확정했다.
사면이 됐어도 추징금은 전부 내야 했으나, 전 씨는 956억 원(2021년 기준)을 미납했다. 추징시효 또한 2013년 10월로 이미 7년 기한을 넘었다. 이 과정에서 전 씨는 "전 재산이 29만1000원"이라고 밝히며 반성 없는 언행을 보였고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후 연희동 자택에서 경호를 받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11월 23일 오전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한마디 반성과 사죄 없이 마무리한 전 씨의 삶,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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