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게재 순서
① 은행권 실적잔치에… “챙겨줄 때 나가자”
② 30대 대리도 떠난다… 지방은행·보험사, 몸집 줄이기 한창
③ 카뱅·케뱅·토뱅 “인재 붙잡아야 산다”
#.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직원 A씨는 올해 초 10억원대 희망퇴직금을 받고 나간 지점장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실적 압박에 보수적인 기업문화 등으로 요즘들어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한 A씨는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희망퇴직금을 받아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A씨는 “최근들어 은행권 희망퇴직 연령대가 넓어지면서 다들 희망퇴직 나이를 더 안 내리는 지 기다리는 분위기”라며 “조건만 맞으면 희망퇴직하고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열기로 은행들이 막대한 이자이익을 거두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가운데 희망퇴직 등으로 은행을 떠나는 인력도 역대 최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올해 희망퇴직으로 은행을 떠나는 직원은 4000명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엔 희망퇴직이 ‘구조조정 칼바람’이라는 절망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엔 조기 퇴직자에게 수년치 연봉을 안겨주면서 만 56세 임금피크제 직원뿐만 아니라 40대 직원들도 희망퇴직에 올라타고 있다. 예년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올해 희망퇴직 4900명 육박
은행권은 올해 연말을 맞아 인력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SC제일은행에선 496명이 지난 10월 29일자로 은행을 떠났다. 이는 2015년(962명) 이후 6년만에 가장 많은 규모로 지난해 29명이 떠난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증가했다. 만 42∼50세 이상, 근속 기간 10년 이상인 직원들이 대상이었다.지난 11월 23일까지 명예퇴직을 실시한 농협은행에선 452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이중 만 40세 이상 직원은 56명이었다. 소비자 금융 청산(단계적 폐지)에 나선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지난 11월 10일까지 받은 희망퇴직 신청자는 2300여명에 달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지난 11월 1차로 1100명에 한해 퇴직 승인이 발표됐다”며 “나머지 인원은 심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연말 접수를 앞둔 하나은행을 제외하고 올해 국민·신한·우리·농협 등 시중은행 4곳에서 희망퇴직으로 떠난 직원은 2073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534명보다 500여명 많은 직원들이 은행을 떠난 것이다.
국민은행에선 1월 말 800명이 그만뒀는데 이는 전년(462명)보다 1.7배 많았다. 사상 처음 1년에 두번 희망퇴직을 단행한 신한은행에선 353명이 응해 전년(250여명)보다 약 100명 많은 직원들이 짐을 쌌다.
우리은행에서도 2020년(326명)보다 140명 많은 468명이 지난 1월 말 희망퇴직 형태로 나갔다. 청산을 진행 중인 씨티은행의 희망퇴직까지 더해지면 올해 시중은행의 희망퇴직자는 4900명에 육박한다. 지난해 약 2100명보다 두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호실적에도 대규모 희망퇴직… 왜?
이같은 대규모 희망퇴직을 두고 일각에선 호실적을 기반으로 인력을 늘려 회사의 성장동력을 키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5대 은행은 올들어 3분기까지 전년동기대비 25.3% 증가한 9조5079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순익 규모와 증가폭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통상 인력 구조조정은 실적 악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꺼내드는 카드로 여겨진다. 하지만 은행들은 양호한 실적을 거둔만큼 직원들에게 유리한 희망퇴직 조건을 내세울 수 있어 인력순환의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은행들의 올해 희망퇴직 조건은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씨티은행은 최대 7억원 한도에서 정년까지 남은 월급을 100% 보상하며 창업·전직 지원금 2500만원도 추가로 준다. 제일은행은 최대 6억원의 퇴직금에다 2000만~6000만원의 창업지원금, 최대 4000만원의 자녀 학자금도 지급한다.
국민은행은 희망퇴직자에게 23∼35개월치 임금에 학자금(학기당 350만원·최대 8학기) 또는 재취업지원금(최대 34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전년보다 600만원 많은 수준이다. 신한은행은 최대 36개월치의 임금을 퇴직금으로 줬다. 부지점장급 직원이 희망퇴직하면 5억원 이상 받고 떠나는 현상이 고착화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은행들은 디지털 인력을 늘리면서도 지점 등 오프라인 인력은 줄이는 분위기다. 온라인 금융이 활성화되면서 은행들이 디지털 업무를 강화하는 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지점 통폐합을 늘리고 있어서다.
실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배진교(정의당·비례대표)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시중은행의 지점폐쇄 계획에 따르면 5대 은행은 올들어 11월까지 203개의 영업점 문을 닫았으며 12월에는 59개 영업점을 폐쇄할 계획이다. 이어 내년 1월에도 72개 이상의 영업점을 축소할 예정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연차일수록 인건비 대비 아웃풋이 떨어져 인건비 효율성 측면에서 인력구조를 항아리형에서 피라미드형으로 전환하려고 한다”며 “직원들의 희망퇴직 수요도 상당한데 특히 여성 행원들은 자녀를 다 키우고 일보다 다른 분야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성향도 뚜렷하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인력들을 줄이고 고비용 인력구조를 구조조정하려는 취지로 보여진다”며 “직원들 역시 조기퇴직을 선호하는 수요도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