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불혹'(不惑)
마흔 살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공자가 논어 위정편에서 이같이 일컬었다.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고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 의미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1982년 출범해 사람으로 따지면 마흔을 맞은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는 어땠을까.
굳이 정의하자면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갈렸다'고 할 수 있겠다. '막내' 구단 KT 위즈의 창단 첫 통합 우승과 이정후·강백호·이의리 등 한국 야구를 이끌 차세대 스타들의 성장까지 반가운 화제도 있었다.
다만, 고개를 조금 돌려보면 전혀 다른 모습도 보인다. 2년째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흥행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일부 선수들의 일탈, 국제대회 부진 등 불혹의 한국 야구는 갖가지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치솟은 야구의 인기만큼 그림자는 더 짙었다. 팬들의 관심도 예년만 못하다. 2일 스포츠빅데이터 전문 기업 '티엘오지'에 따르면 지난해 KBO리그 정규시즌 TV 평균 시청률은 0.71%로 2020년(0.84%) 대비 15.1% 감소했다.
TV 총 시청자 수도 전년 1억2782만명에서 1억776만명으로 15.7% 줄었다. 야구 중계를 볼 수 있었던 네이버 총 동시 접속자 수도 20.3%(2140만명→1706만명) 하락했다. 티엘오지 측에 따르면 시청률과 접속자 수 등 야구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는 감소하는 추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7월 NC 다이노스와 키움 히어로즈, 한화 이글스 선수들이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어기고 호텔에서 술판을 벌였다. 이중 일부는 사실대로 동선을 보고하지 않아 방역 당국의 역학 조사마저 방해했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결국 KBO는 사상 초유의 리그 중단을 선언했다. 팬들은 야구판을 향한 비난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티엘오지 측은 "방역 수칙 위반 논란이 불거진 지난해 7월을 기점으로 8월까지 야구 관련 기사 조회수는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기름을 붓는 사건도 있었다. 온갖 비난을 성적(금메달)으로 만회하겠다는 이른바 '야구 보답론'에 매몰된 채 도쿄올림픽 무대로 향했던 대표팀은 노메달에 그쳤다. 결과만큼이나 전술, 선수 기용 등의 과정도 답답했다.
그럼에도 불혹의 한국 야구는 굳건했다. 세상의 유혹엔 잘만 흔들리더니 비판엔 아랑곳하지 않았다. 책임기구인 KBO는 리그 중단과 관련, 관리 부실에 대해 사과는 물론 재발 방지책도 내놓지 않았다. 그동안 해왔던 대로 시즌 종료 후엔 번듯한 시상식을 열어 상도 주고받았다. 그 어디에서도 자기반성은 보기 힘들었다. 정지택 KBO 총재의 임인년 신년사 역시 콘텐츠 강화 등 외적인 성장에 집중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번 겨울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선 역대급 돈잔치가 펼쳐졌다. 무관중 경기가 장기간 이어진 탓에 재정 악화를 우려하던 구단들은 FA 시장이 열리자 100억원대 계약을 안기느라 바빴다. 이를 통해 2022년 FA 시장은 총액 1000억원 시대에 다가섰다. 2016년 기록한 종전 최다액(766억2000만원)도 훌쩍 넘어섰다.
'오버페이는 없다'던 구단들의 외침은 허공의 메아리가 됐다. 100억원이 넘는 계약을 따낸 선수만 5명에 달했다. 지난주까지 발표된 FA 계약액은 총 971억원이다. 보상금 규모까지 더하면 올겨울 FA 시장에서 1000억원이 넘는 돈이 오간 셈이다. 시장엔 아직 내야수 정훈도 남았다.
KBO리그 최저 연봉은 3000만원인데, 대어급 선수들의 곳간은 갈수록 두둑해진다.
선수 간 '부익부 빈익빈'도 날로 심화한다. 퓨처스(2군)리그를 향한 관심과 지원은 1군에 한참 못 미친다. 특히 신설된 2군 FA 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KBO는 지난 2011년부터 격년제로 실시해왔던 2차 드래프트를 폐지하는 대신 2군 FA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광풍'이 부는 1군 시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2군 FA 자격을 얻은 3명의 계약 소식은 해를 넘겼는데도 들리지 않는다.
흔히 프로의 세계는 '실력=돈'으로 정리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실력 속에는 프로 선수로서 도덕성과 품격 등도 담겨야한다. 소위 말하는 '대박'만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바람직한 풍토를 만드는 것은 선배들의 몫이 중요하다.
경기장 안팎에서 후배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받은 사랑을 팬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문화도 필요하다. 이 또한 선배가 앞장설 일이다. 구단을 비롯한 KBO의 제도적 지원도 물론 뒷받침돼야 한다.
마흔의 나이 동안 외적인 성장을 거듭한 한국 야구는 이제 내적 성장을 살필 때다. 불혹을 지나 성숙미를 더하는 멋진 한국 야구. 2022년에는 그런 그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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