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설립돼 23년간 3260명의 남성 청소년들을 돌봤던 강남구청소년쉼터가 문을 닫는다. 지난해 12월29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강남구청소년쉼터에서 관계자들이 짐을 옮기고 있다. 2021.12.2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해 9월 '부동산 가격 상승의 여파로 입주할 건물을 찾지 못하고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고 알려져 논란이 됐던 '강남구청소년쉼터'가 결국 문을 닫았다. 강남구청소년쉼터는 1998년 자치구가 만든 최초의 구립 청소년쉼터였다. 이번 시설 폐쇄로 서울 시내 남자 청소년이 머물 수 있는 단기 쉼터는 3곳에서 2곳으로 줄었다.
지난달 29일 오전 10시 시설 폐쇄를 이틀 앞두고 방문한 서울 강남구 수서동 강남구청소년쉼터에서는 쉴 새 없이 짐이 쏟아져 나왔다. 20여년의 세월동안 3260명의 아이들이 거쳐 간 쉼터에는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많았지만 모두 폐기물이 됐다. 아이들이 사용하던 책상, 서랍, 옷장, 침대 등이 뜯겨 복도로, 엘리베이터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건물 밖 아스팔트 바닥으로 옮겨졌다.

연말 시설 폐쇄를 앞두고 입소자를 받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청소년 1명도 이미 전원 조치가 됐기에 쉼터가 문을 닫는 순간까지 남아 있는 아이는 없었지만 쉼터 곳곳에는 아이들이 이곳을 이용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10평 남짓 식당 한쪽 싱크대에는 당장 누가 와서 밥을 해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식기며 주방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싱크대 반대편 식탁이 자리한 쪽 창문에는 '배고프지? 밥 더 줄까? 천천히 먹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지만 이제 더이상 이곳에 밥을 먹으러 올 사람은 없었다.

지난해 12월29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강남구청소년쉼터에서 관계자들이 짐을 옮기고 있다. 2021.12.2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구청 "강남구 청소년 이용 안 한다"며 시설폐쇄 결정
짐을 정리하는 10여명의 사람들 중 절반은 돈을 받고 철거를 하는 업체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이제 쉼터에서 돈을 받고 일할 수 없게 된 직원들이었다. 철거 업체 인부들의 얼굴에 '고됨' 이외의 다른 표정이 보이지 않았던 것과 다르게 이곳을 떠나야 하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답답함이 섞였다.

지난해 8월 강남구는 쉼터를 위탁 운영해 온 태화복지재단 측에 더이상의 위탁 계약 연장은 없으며 연말까지만 시설을 운영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2012년부터 쉼터 시설을 무상으로 제공해온 재단 측이 더이상 시설 제공이 어렵다는 의사를 밝히자 구청은 대체 부동산을 찾지 못해 시설 폐쇄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관련기사: 땅값 올라 문닫는다는 청소년 쉼터, 이면엔 뿌리깊은 혐오·기피)


당시 구청 측은 대체 부동산을 찾지 못한 이유에 대해 급격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후보 지역 주민들의 반대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강남구가 청소년쉼터를 폐쇄를 결정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해당 시설을 이용하는 청소년 중에 '강남구에 거주하는 청소년'의 수가 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난해 8월25일 개최된 '강남구 민간위탁운영 관련 특별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강남구청 담당자가 '강남구 아동의 입소율이 10% 미만이고 다른 구에도 일시보호 쉼터가 있기 때문에 폐쇄를 결정했다'고 구의원들에게 보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강남 청소년들이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폐쇄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이 '집을 나온 보호 대상 청소년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비판했지만 강남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시설 폐쇄가 '위기 청소년 보호를 강화한다'는 정부의 방침과도 어긋나기 때문에 여성가족부와 서울시 등에서 강남구를 설득하고 나섰지만 이 역시 먹히지 않았다.

지난해 12월29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강남구청소년쉼터에서 관계자들이 짐을 옮기고 있다.2021.12.29/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 손 잡아줄 기회 더 줄어들 것"
이날 쉼터 복도에서 폐기되는 문서들을 뒤적이던 박건수 강남구청소년쉼터 소장은 며칠 후면 '전(前) 소장'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안타깝고 착잡한 기분"이라고 운을 떼었다.

폐쇄 결정이 이뤄진 뒤에도 입소 문의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거절했다고 밝힌 박 소장은 "서울 시내 남자 단기 쉼터는 3곳뿐인데 이제 2곳밖에 남지 않는 것"이라며 "보호가 필요한 청소년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곳이 더 줄어들어 도움을 줄 수 없게 된 상황이 답답하다"고 전했다.

박 소장은 "구에서 쉼터에 지원하는 금액은 인건비뿐이고 나머지 금액은 국비로 지원이 된다"라며 "따지고 보면 3억원에서 3억5000만원 정도의 금액인데 그 돈을 아끼려고 시설을 폐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박 소장은 9월부터 쉼터의 사정이 여러 차례 언론 보도되고 알려졌음에도 폐쇄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을 두고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전반적인 국민들의 인식이 썩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박 소장과 함께 쉼터에서 근무해온 임성권 사회복지사는 "재단에서 입장을 번복하고 재위탁을 하기로 하고 자리도 다시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는데 강남구청은 더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다"라며 최초에 논란이 됐던 부동산 문제가 해결이 됐음에도 시설폐쇄를 강행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강남구청 관계자는 "폐쇄의 이유는 인근 주민들의 민원도 있었고 강남구 내 시설이지만 강남구 청소년들의 이용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서울시의 다른 구에도 쉼터 시설이 존재하고 있고, 땅값이나 민원 등 복합적으로 봤을 때 폐쇄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단 측이 장소를 다시 무상제공하기로 했음에도 폐쇄 방침을 유지한 것에 대해서도 구청 측은 "장소 제공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이야기하자'고만 논의가 되다가 결렬이 된 채로 지속됐다"라며 "당시 상황은 (무상 제공을)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 정책이 결정된 상황이고 바로 뒤집듯이 계속하자고 할 수도 없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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