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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이장호 기자 = 전국민적인 분노를 일으켰던 이른바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 '소원'에는 피해자인 초등학생이 법정에 직접 출석해 증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현직 판사가 "기가 막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애를 어떻게 거기에 두냐"고 평했던 그 장면은 대한민국에서 곧 현실이 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미성년 성범죄 피해자의 진술 녹화물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제 피해자의 진술 녹화물은 종전과 달리 피해자 자신을 신문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증거능력을 인정받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결정으로 갑자기 법정에 서게 된 피해자들이 재판과정에서 2차피해를 받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헌재 "피고인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 보장돼야"


9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3일 성폭력처벌법 제30조 제6항을 재판관 6대3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성폭력처벌법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정신적 장애로 사물 변별 및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 피해자의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녹화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30조 6항은 '이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 진술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피해자나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조력인의 진술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경우에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성폭력범죄의 특성상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이 사건의 핵심 증거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도, 주요 진술증거의 왜곡이나 오류를 탄핵할 수 있는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고 위헌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이같은 다수의견에 대해 이선애·이영진·이미선 재판관 3명이 "피해자가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를 복기하고 격렬한 탄핵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범죄행위만큼이나 피해자에게 강한 정신적 충격과 모멸감을 줄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지만, 다수의 벽을 넘지 못했다.

헌재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가 아닌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현재 재판중인 미성년 대상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들은 법정에 나오는 것 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 "실무 모르는 소리" 비판…대안도 미미

'먼저 꼬신거 아니냐', '거부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러지 않았냐', '허락한 것 아니냐'

성범죄 재판에 증언을 하러 나간 피해자들은 가해자 측으로부터 혹독한 질문을 받는다. 질문을 가장한 공격도 많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수준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은 이번 결정을 보고 '재판관들이 형사재판이랑 성범죄 재판을 안 해보셨구나'라고 말한다"면서 "법관 출신 재판관들은 성범죄 재판 해본 사람과 안해본 사람이 합헌, 위헌이 나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어른들이 애들한테 황당한 짓을 많이 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법조인들은 또 범행 발생 후 수사와 기소과정을 거쳐 재판에 서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도권법원의 판사는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여러가지 변수들로 인해 기억과 진술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초기 진술이 가장 정확한 기억"이라며 "몇개월, 몇년이 지나 법정에서 아이한테 당시 상황을 물어보면 당연히 잘 대답하지 못할텐데, 그러면 피고인들에게 다 무죄를 선고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도 "어른들한테 일주일 전에 뭐 먹었는지 물으면 헷갈려서 정확히 대답 못하는데, 하물며 애들한테 막 캐물어보면 대답은 당연히 바뀐다"고 같은 점을 지적했다.

지방법원의 판사는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은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에 헌재가 꼭 위헌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입법개선시한을 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몇세 이상의 피해자의 경우로 나이제한을 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통째로 위헌결정을 해 혼란을 초래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헌재는 비판 여론을 예상한 듯 결정문에서 "사건 수사 초기단계에서부터 증거보전절차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피해자의 신상정보의 누설 방지 등을 위한 제도, 비디오 등 중계장치에 의한 증인신문제도를 이용한다면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헌재가 열거한 방안들은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수사단계에서 증거 한건 한건에 대해 일일이 판사가 나가서 증거보전을 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일단 피해자들이 신청을 해야하는데 그럴 생각을 잘 못하고, 올해부터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도 없어지면서 법원이 할 일이 급격히 많아지는데 법원이 일일이 증거보전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소리"라고 말했다.

비디오 중계장치에 의한 증인신문에 대해서도 "증언 시 미묘한 표정 변화같은 것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법관들이 선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원 내 연구회인 젠더법연구회 소속의 한 판사도 "헌재가 말한 방안들도 모두 연구가 됐었지만 2차피해 방지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법원, 검찰 등 대체입법 방안 논의 긴급 착수했지만

법원 내 연구회인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는 10일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진술 관련 실무상 대책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고, 대체입법 가능성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젠더폭력처벌법 개정 특별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5일 1차회의에서 성폭력범죄 피해아동 보호와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성폭력처벌법 개정 방안을 논의했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전문위원회는 6일 범죄 양형 조건에 피해자의 연령, 피해 회복 여부 등이 명시되도록 형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과 공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증인 신문에 의하지 않고 양형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냈다.

그러나 한 법조인은 "논의들은 앞으로의 법 개정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신속히 피해자 지원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되지도 않는다"며 "지금 당장 법정에 서야 하는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는 "범죄가 발생해도 초기수사가 제대로 안돼 기소조차 못하는 사건이 엄청 많다"며 "헌재는 무고한 피고인을 염려하지만, 현실에서는 무고한 피해자가 100배는 더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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