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게재 순서
(1) 노동이사제·중대재해법 이어 대표소송… 잠 못드는 CEO들
(2) “기업 길들이기” vs “주주가치 제고”… 주주대표소송 대체 뭐길래
(3) 몰아치는 ESG 법제화… 기업은 울고 싶다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소기업 10곳 가운데 9곳이 ESG 준비가 덜 됐다고 말하는 등 급진적인 제도 적용으로 기업들의 경영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
대세로 자리 잡은 ESG… 각국 정부, 제도 마련으로 기업 압박
ESG 경영은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 보호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을 뜻한다. 탄소중립 목소리와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커지면서 ESG 경영은 세계적 흐름이 됐다. 세계 경제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2020년 9월 ESG 평가 지표가 담긴 보고서를 발행하는 등 기업의 ESG 달성 여부는 중요 사항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ESG 경영을 강제하는 제도 도입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들은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기후 관련 금융 위험에 관한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6월에는 기후 위험 공시법 등 11개 주제로 구성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투자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하원을 통과했다.
유럽연합(EU)은 2014년 10월 비재무적보고지침(NFRD)을 제정해 유럽 내 근로자 수 500인 이상 대기업 등이 ▲환경 ▲사회·고용 ▲인권 ▲부패 등의 리스크 관리 방안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지난해 3월10일에는 유럽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ESG 공시를 제도화하는 ‘지속가능금융 공시 규제’(SFDR)를 시행했다.
한국도 ESG 공시 의무화로 기업 압박에 나섰다. 정부는 오는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상장사는 환경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다. 2030년부터는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금융당국도 기업들이 ESG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나서고 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투자자들이 투자에 참고할 수 있도록 재무제표에 ESG 관련 내용을 넣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계는 ESG 경영 여부를 평가하는 제도 실행에 불만이 높다. 집단소송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ESG와 같은 비재무적 정보는 가정·확률이 개입되는 불완전한 자료”라며 “이를 바탕으로 집단소송을 걸면 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데 ESG를 강제하는 것이 맞는가”라고 밝혔다. “본래 ESG는 소비자 유치, 투자 확대 등 기업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며 “소비자나 상대 기업이 ESG를 요구할 때 기업이 선택 여부를 결정해야지 제도를 이용해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은 대비하나… ESG 관련 법안, 중소기업 옥죈다

경영 여건이 좋은 대기업은 ESG 경영에 어느 정도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이사회 내 위원회인 거버넌스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개편해 ESG 논의에 나섰다. 현대자동차도 같은 달 2021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해 ESG 경영 의지를 밝혔고 SK그룹은 오는 2030년 기준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인 210억톤의 1% 규모인 2억톤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ESG 경영 도입에 난색을 표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9월 중소기업 3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기업 ESG 애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9.4%는 ESG 경영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다. 53.7%는 중소기업을 향한 ESG 도입 요구가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부적절하다고 응답한 기업의 40.4%는 물적·인적 비용 부담을 이유로 꼽았다. 중소기업과 직접적 연관 없음이 19.9%, 관련 지원 부족이 14.9%, 시기적으로 이름이 13.0%로 뒤를 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수출 기업이나 대기업 납품 업체는 ESG 평가 요구를 받는다”며 “취지에는 공감하나 보고서 작성 등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많다”고 했다. “각 정부 부처에서 ESG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데 투자 기업이 요구하는 기준과 다른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ESG 경영 정착을 위해 국제 기준이 나올 때까지 제도 도입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IFRS)이 국제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해 글로벌 기준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이런 추이를 보고 있지 않다”며 “글로벌 기준과 상충하면 우리 제도를 바꾸는 이중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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