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일본이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진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로 하면서 다시 한번 한일 관계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일본이 사도 광산을 추천한 간략한 취지는 이렇다. 17~19세기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도 광산에서 금을 생산한 만큼 전통적 가치가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선인이 강제 동원돼 노역이 이뤄졌다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일본 자민당 내 극우 세력은 아예 이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이는 이들의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달 24일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는 것을 주저하자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조회장은 국회에서 열린 예산위원회에서 "사도 광산의 세계문화유산 추천은 국가의 명예와 관련된 사태"라며 추전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면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카이치 정조회장의 발언에 기시다 총리도 일종의 맞장구를 쳤다. 기시다 총리는 "들을 필요도 없는 비방과 중상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주장이자 강제 동원 역사가 '들을 필요도 없는 비방과 중상'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조선인 강제 동원 및 노역이 들을 필요도 없는 비방이자 우리나라는 당사자가 아닐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일본 정부와 자민당 내 극우의 인식은 매우 뒤틀려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뒤 한반도에서 무려 80만 명을 강제 동원한 역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사도 광산에서는 최소 1200명가량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된 것으로 확인된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난 2019년 펴낸 '일본지역 탄광·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미쓰비시 광업 사도 광산은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산출량이 높은 광산이었으며 무려 1989년 3월 31일까지 채굴이 이뤄졌던 곳이다.
더욱이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국립공문서관 쓰쿠바 분관에는 '조선인의 재일자산조사보고철-귀국 조선인에 대한 미불임금채무 등에 관한 조사결과'와 '경제협력 한국?105?조선인에 대한 임금미불채무조'라는 제목의 자료가 있다. 이 자료에는 1140명의 미불임금을 공탁(23만1059엔)한 기록이 남아있다. 최소 1140명의 조선인이 강제 동원됐으며, 이들에게 임금을 직접 지불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조사를 통해 148명이 사도 광산 강제 동원 피해자로 인정까지 받았다. 148명 중 9명은 현지에서 사망까지 했다.
보고서에는 피해자의 구술도 남아 있다. 191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1940년 11월 사도에 동원된 임태호씨가 그 주인공이다. 1997년 9월 사망할 때까지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川崎市)에 살았던 임씨는 모집이라는 형태로 일본 땅을 밟았지만 도착해서 징용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임씨가 한 일은 지하에서 광석을 채굴하는 것이었는데 하루하루가 공포 그 자체였다. 매일 같이 낙반 사고가 있어 '오늘은 살아서 이 지하를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임씨는 두 번이나 부상을 입었지만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으며 탈출에 성공해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임씨는 “전후 반세기 이상이 지났으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들은 적이 없다"며 "나와 같은 경우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 성의 있는 진정한 사죄를 받기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강제 동원 정황과 증거 자료는 우리나라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사도 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기 전 긴급 성명을 발표한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도 비슷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니가타 현사(縣史) 통사편 8 근대 3(1988)에는 '강제연행된 조선인'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여기에는 쇼와 14년(1939)에 시작된 노무동원 계획은 명칭이 '모집', '관(官) 관여', '징용'으로 변화했지만 조선인을 강제로 연행했던 사실은 동질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들은 1992년 사도 섬에서는 강제 동원 피해자를 초청한 증언대회도 열렸으며 '연초 배급 대장'과 기타 자료에 따르면 500명 이상의 조선인 명부도 작성돼 있으며, 1945년에는 경상북도 울진군 출신 조선인 징용 명부도 남아있다고 했다. 즉, 사료를 통해서도 강제 동원과 노역은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의 반발과 입장 차에 대해 "냉정하고 정중한 논의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마치 짠 듯이 기시다 총리,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냉정과 정중'이라는 단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있는 사실도 외면하고 왜곡하는 상황에서 '냉정하고 정중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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