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대표 상품인 ‘버킨백’. 에르메스가 버킨백의 상표권과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고 나섰다. 버킨백이 그려져 있는 가상의 짝퉁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지난 1월 미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메이슨 로스차일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로스차일드는 버킨백 디지털 그림 파일에 화려한 소재와 색을 입힌 뒤 ‘메타 버킨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그는 100개의 메타 버킨스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를 글로벌 NFT 거래소 오픈씨(OpenSea)에 올렸다. 메타 버킨스로 그가 벌어들인 돈은 약 10억원에 달했다.


에르메스는 거세게 반발했다. 에르메스는 “우리는 수공예 정신으로 만든 실물을 중시하기 때문에 NFT 시장에 진출하지 않았고 버킨백의 NFT 제작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로스차일드는 “누구나 수정 헌법 1조에 따라 주변 세계에 대한 본인만의 해석을 기반으로 예술을 창작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면 로스차일드는 상표권·저작권 침해로 세간의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가상에서 불거진 이 논쟁은 NFT의 근본적인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자산에 소유권을 부여하는 디지털 토큰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탈중앙화돼 있으며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탈중앙화는 규칙이나 규제, 통제의 부재를 전제로 한다.

NFT는 고유의 암호값을 가져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하지만 NFT 생성 전 단계에서 표절, 위조 등이 난무하고 있다. 누구나 NFT를 쉽게 발행할 수 있고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진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이 NFT로 발행돼 경매에서 약 4억원에 팔렸다. 이후 뱅크시가 영국 BBC 방송을 통해 “NFT를 발행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사기 경매임이 드러났다.


일련의 NFT 사건들을 보며 가상의 세계에서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를 생각케 된다. 탈중앙화된 NFT시장엔 법이나 규제가 없기 때문에 원작자와 구매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방법이 없다. 탈중앙화를 자유와 동일시하는 시각도 문제다. 자유를 억압으로부터의 탈피 정도로 해석하는 시대는 지났다. 개인의 자유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NFT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지만 정부 정책은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NFT 거래소도 탈중앙화와 규제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법과 규제가 제정되길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 NFT시장을 가상이 아닌 제2의 현실로 여긴다면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 역시 자유와 함께 책임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