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많고 탈많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지난 20일(이하 한국시각) 폐막했다. 스피드 스케이트나 쇼트트랙과 같은 기록 경기에서 수많은 신기록이 나왔지만 전체적으론 좋지 않은 경기장 여건과 편파 판정 논란, 주최국 중국의 막무가내식 통제와 운영 등으로 참가국 선수들은 물론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대회로 남게 됐다.
특히 선수단이 머물렀던 경기장 숙소의 부실공사와 외국 기자들에 대한 필요 이상의 통제, 외국 선수단에 대한 홈팀 중국팬들의 과격한 행동 등으로 일각에선 "다시는 중국에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열도록 하면 안된다"는 어조의 지적도 나올 정도로 운영 등의 측면에선 실망스럽다는 혹평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친 대한민국 선수단에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낮은 수준의 빙질로 어려움이 예상됐던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무려 4개의 메달을 따내는 등 놀라운 성과를 나타냈다. 자칫 결선 진출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 속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결과를 보여준 피겨 스케이팅과 설상 종목에서의 선전은 장기간 바이러스로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한없이 좋은 선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 선수단의 이번 대회 하이라이트는 역시 쇼트트랙이었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편파 판정과 중국인들의 몰지각한 야유를 딛고 금메달 2개를 포함, 모두 5개의 메달을 따내며 대회 참가국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등 "역시 쇼트트랙 강국"이란 이미지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조력자 윤홍근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선전 이끌었다"
이 같은 선수단의 선전 뒤엔 강력한 '조력자'가 있었다. 20여일 간 중국 현지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을 이끌었던 윤홍근(66·사진) 대한빙상경기연맹회장(제너시스BBQ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대회 시작 닷새 전에 현지로 날아간 윤 회장은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상황인 만큼 선수들의 안전과 건강 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다른 한편으론 대회 시작 전부터 우려됐던 현지 텃새와 편파 판정에 대해서도 신경을 곤두 세웠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은 대회 시작 직후다. 대회 이틀째인 지난 5일 쇼트트랙 혼성 계주에서 개최국 중국은 역대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릴레이 경기 '노터치'로 금메달을 땄다. 물론 교본에도 없는 심판의 잘못된 판단이 작용했다. 많은 돈을 받고 중국 대표팀에 합류한 한국인 감독과 러시아 귀화 코치는 물론 중국인 전체가 세상 다 얻은 것처럼 환호했다.
심판의 편파 판정이 대한민국 선수단에 영향을 끼친 사건은 이틀 뒤인 지난 7일 발생했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 준결승에서 대한민국 간판 황대헌이 1분26초50을 기록하며 조 1위로 골인했다. 하지만 문제의 영국인 심판은 비디오 판독을 거쳐 황대헌을 실격 처리했다.
영국 심판은 황대헌이 중국 선수 2명의 견제를 받으며 1위 자리를 뺏는 과정에서 레인 변경을 늦게 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에 중국의 런쯔웨이와 리원룽이 어부지리로 결승 티켓을 따내며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이준서 역시 준결승 경기 종료 직후 레인 변경 시 반칙을 저질렀다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실격당했다. 공교롭게도 황대헌과 이준서 대신 결승에 오른 선수는 모두 중국 선수들이었다.
대회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들이 놀랐다. 경기를 중계하던 해외 주요 방송사들의 해설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심판 판정을 비난했다. 유독 역대 대회에서 '반칙왕'으로 거듭났던 전 중국인 선수 해설자들만 신이 났다. 한국에서도 "이쯤 되면 보이콧해야 하는 게 아니냐"란 분위기가 형성됐다.
윤 회장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더 이상 주저했다간 이번 대회 자체를 망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윤 회장은 황대헌과 이준서의 실격 다음날인 8일 긴급 기자회견을 주도하며 올림픽 도중 이례적으로 편파판정과 관련, 강하게 항의했다.
곧이어 국제빙상연맹(ISU)에도 두 선수의 실격 처리를 문제삼고 부당한 판정을 개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회장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 면담을 요청하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도 제소했다. CAS가 관련 제소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결과도 바뀔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게 관행임을 알고 있지만 '회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다 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엔 무엇보다 '선수들을 지켜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윤 회장의 노력과 진심은 두 가지를 만들었다. 하나는 이번 대회에서 더 이상의 편파 판정이 쉽지 않음을, 나머지 하나는 대한민국 선수들이 강한 의지를 다시 다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선수들도 더욱 힘을 냈다. 지난 9일 황대헌은 1000m에서의 아픔을 뒤로 하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1500m 결승에서 1위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 황대헌은 현장 인터뷰에서 윤 단장에 대해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문제의 남자 1000m 경기에서 헝가리 선수를 양손으로 밀치는 반칙을 저질렀음에도 금메달을 받아든 중국의 런쯔웨이는 1500m 준결승에선 블로킹에 따른 실격 판정을 받았다. 페널티 처리에 앞서 조3위에 머물러 애당초 결승 진출이 어려웠다.
윤 회장의 직접적이고 당당한 항의가 정정당당한 스포츠 문화를 꽃 피우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윤 회장의 항의 이후 주최국인 중국 중심의 편파 판정이 사그라들었다. 대회 후반엔 ISU의 결정으로 판정 논란을 일으켰던 피터 워스(영국) 심판장이 물러나고 헝가리의 베아타 파다르 심판장이 나섰다.
계주 3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 여자 선수팀은 헝가리 심판이 보는 가운데 1500m 개인 경기에선 최민정이 대회 두번째 금메달을 따냈다. 윤 단장의 강한 리더십이 기울어졌던 대회의 흐름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은 셈이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든든히 선수들을 지켜줬던 윤 단장이 존재했기에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더욱 빛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