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product placement)이란 영화 촬영을 위한 소품 배치 업무에서 파생된 말로 기업에서 협찬받은 소품을 영화에 노출시키는 광고기법을 가리킨다. 초기엔 영화 제작 시 소품비를 아끼려는 목적에서 영화사가 먼저 기업에 제안했지만 1945년 영화 ‘밀드리드 피어스’에 나온 버번위스키가 관객에게 회자되면서 점차 기업들이 제품을 들고 영화사를 찾게 되었다.?
PPL이 본격화된 것은 1982년 영화 ‘ET’에 초콜릿을 협찬한 허쉬(Hershey)가 소위 ‘대박’을 터트리면서부터였다. 사실 ‘ET’의 제작진은 당시 업계 1위였던 마즈(MARS)의 ‘M&Ms’를 협찬받으려 했다가 거절당한 후 허쉬의 ‘Reese’s Pieces’를 찾은 것이었다. 허쉬는 세계 최초로 대량 생산된 초콜릿이자 미군에 전투식량으로 초콜릿을 납품하던 기업이었지만 당시엔 마즈에 밀려 쇠락해 가던 중이었다. 허쉬는 자사 광고에 ‘ET’의 캐릭터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PPL을 수락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ET’의 성공으로 3개월 만에 66%의 매출 신장을 이루고 미국 초콜릿 업계 1위라는 타이틀까지 되찾았다.

제품 이미지를 빠르고 강력하게 향상시키려면… PPL

제품의 이미지를 단번에 끌어올리는데는 PPL만한 것이 없다. 1995년 영화 ‘007 골든아이’에서 007은 자신의 오랜 애마 에스턴 마틴 대신 BMW Z3를 타고 나옴으로써 전 세계 젊은 남성에게 BMW를 ‘본드카’로 각인시켰고 2000년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사용한 ‘SPH-N270’폰은 삼성을 미래지향적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이미지메이킹시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이네켄은 영화 ‘007 스카이폴’에서 007이 마티니 대신 하이네켄을 마시게 하는데 4500만 달러(한화 약 550억 원)를 쓰기도 했다.?
PPL은 매우 효과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 방법이다. 주인공이 입고 나오는 옷과 가방, 시계와 자동차는 그 자체로 화제가 되고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기업은 PPL을 한만큼 매출이 늘어나고 제작사는 PPL로 제작비를 충당하기에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제품을 노출하는데만 혈안이 되면 극의 흐름을 방해하게 되고 결국 극 자체의 완성도마저 떨어뜨리게 된다.?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을 이룬 지금, 공격적인 PPL은 정치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중국 기업은 중국 내 한국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아지자 ‘여신강림’ ‘빈센조’ 같은 한국 드라마에 한국에는 판매되지도 않는 제품을 노출시켜 한국 관객의 거센 항의를 받았고, ‘조선구마사’의 경우엔 동북공정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요소들을 삽입해 조기 종영되기도 했다.


현대해상 '타임 투 다이'/사진=유튜브 캡처


코미디의 소재가 된 PPL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PPL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니 이제는 역으로 이를 이용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코미디 영화 ‘웨인즈 월드’에서 웨인 캠벨(마이크 마이어스 분)은 온갖 제품을 들고나와 대놓고 PPL을 시전 함으로써 PPL로 범벅이된 현대사회를 비판했는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PPL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PPL에 대한 관심은 너무도 높아 이젠 광고마저 대놓고 PPL을 시전 할 정도가 되었다. 직접광고가 간접광고를 흉내 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현대해상의 광고 ‘타임 투 다이렉트’는 바로 이런 주객전도를 노림으로써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얻어냈다. ‘타임 투 다이렉트’는 광고전문포털 TVCF ‘오늘의 크리에이티브’ 부분에서 3주 동안 1위를 기록했고 현재(3월10일) 유튜브 조회수 1500만 뷰를 넘겼다.
광고는 예산 문제로 좌초될 뻔한 좀비 영화 ‘타임 투 다이’의 촬영장에 현대해상 다이렉트의 PPL 담당자가 나타나며 시작된다. 감독에게 다가온 PPL 담당자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PPL 담당자로 분했던 한지은 배우. 그녀의 억척스러운 캐릭터는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좀비의 침입으로 거실에 화재가 발생하면 주택화재보험을, 좀비를 피해 자동차 안으로 피신하면 자동차보험을, 어린이집 승합차로 좀비가 몰려들면 어린이종합보험을 PPL 하자고 감독을 조른다.
“그게 이 상황에 말이 됩니까”라는 감독에게 “그럼요~. 저희는 빠르고 든든하게 가입이 가능하거든요”라며 깨알 PPL을 이어가고, 좀비를 피해 숨은 방에서 스프링클러를 맞는 가족에게는 보험이 있으니 어두울 필요가 없다며 밝게 웃으라고 주문한다. 한지은이 하도 들이대자 “아니 그럼 뭐 글자만 봐도 좀비들이 놀라서 도망가게, 그렇게 할까요?”라며 반문하는 감독에게 한지은은 “어머~ 굿 아이디어. 완전 굿 아이디어. 감독님 지니어스”를 외친다.?
한지은의 어거지에 지친 감독은 스쿨존 장면이 나오자 스스로 나서서 “그쵸 스쿨존은 특별히 조심해야 하니까 운전자보험 가입 장면 하나 다이렉트하게 추가하고 가죠”라며 자신의 영화를 포기하고 만다. “이럴거면 ‘타임 투 다이’가 아니라 ‘타임 투 다이렉트’가 낫겠네”라고 자조하는 감독에게 한지은은 “진짜네~ 이참에 제목을 ‘타임 투 다이렉트’로 갈까요”라며 끝까지 PPL을 밀어부쳐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현대해상 '타임 투 다이'/사진=유튜브 캡처


광고 아닌 척하는 PPL, PPL인 척하는 광고

PPL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시대, 오히려 억지스럽게 PPL을 붙이는 PPL 담당자와 이로 인해 산으로 가는 영화, 좌절하는 감독을 코믹하게 보여준 현대해상 광고는 시대적 문제를 웃음으로 희화화하며 자신들이 광고하고 싶은 보험상품을 모조리 보여주는 매우 ‘지니어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약 진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들 보험상품을 PPL로 만났다면 그 어떤 관객도 웃지 못했을 것이다. 광고 아닌척 광고하며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모습에 ‘이게 영화냐’며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PPL로 인해 망가져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낸 이야기는 관객들이 이 아이러니를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웃음은 안도감에서 온다. 심형래의 ‘영구’나 주현영의 ‘주현영 인턴기자’를 보며 웃는 이유는 상대방의 모자란 행동과 비교해 난 그렇지 않다고, 너 보다는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현대해상 광고를 보며 맘 놓고 웃을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광고 아닌척 광고하는 PPL, 나도 모르게 내 지갑을 열게 만들던 PPL을 이제 역으로 바라보며 ‘내가 네 속셈을 모를까봐? 이건 광고야!’라고 할 수 있기 때문, 광고가 광고임을 알아본 안도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