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우크라이나 수도 부차에서 러시아군 퇴각 뒤 발견된 민간인 학살 흔적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가 소집된 5일(현지시간) 미국은 러시아의 유엔인권이사회 자격 박탈을 요구한 반면, 중국은 섣부른 비난을 삼가야 한다며 사실상 러시아를 두둔했다.
CNN에 따르면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는 인권 존중을 촉진하는 것이 목적인 기구에서 권위 있는 지위를 가져선 안 된다. 이는 위선의 극치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며 러시아의 이사국 자격 정지를 요구했다.
러시아는 지난 2020년 10월 중국 등과 함께 유엔 인권이사회 3년 임기 이사국으로 선출됐다. 이사국은 회원 가입 기간 지속적으로 심각하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고 판단될 경우 자격이 정지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선 유엔 총회 193개 회원국 중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나는 러시아의 비양심적인 전쟁으로 인한 난민 위기를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몰도바와 루마니아에서 귀국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그 소름끼치는 사진을 봤다"며 "길거리에 죽어 있는 시체들, 즉결 처형된 것으로 보이는 그들의 손은 등 뒤로 묶여 있었다"고도 했다. 이어 "당국은 이 사진에 담긴 사건들을 독립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미국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평가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린필드 대사는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참여는 이사회의 신용을 손상시키고 유엔 전체를 약화시킨다"며 러시아의 축출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날 안보리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제기한 부차 민간인 학살을 부인하는 러시아의 요청으로 소집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부차와 호스토멜 등 키이우 인근 도시에서 발견된 민간인 시신만 410구에 달한다면서 러시아군에 의한 전쟁범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중엔 손발이 뒤로 묶인 채 뒤통수에 총상을 입은 민간인 모습이 발견되는가 하면 신체 일부 부위만 발견된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날 회의장에도 일부 참상이 사진으로 공개됐다.
중국의 입장은 미국과 극명하게 갈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장준 주유엔 중국 대사는 "부차의 민간인 사망 보도와 사진은 매우 참혹하지만, 상황을 검증한 뒤 그 어떤 비난도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혐의를 부인하는 점을 감안, 이를 두둔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장 대사는 "(러시아에 대한 서방 등의) 제재는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효과적이지 않고 오히려 경제 피해만 가속화한다"면서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연합(EU)이 러시아와 포괄적인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번 전쟁 기간 러시아를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우크라이나 '침공(invasion)'이란 단어 사용을 자제하고 '전쟁(war)'으로만 표현하거나, 전쟁 원인이 서방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안보 요구가 무시된 데 있다는 러 측 주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2차대전 후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러 대사 "거짓말"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안보리 회의장에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 연설도 이뤄졌다.
AFP 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자행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집에서 살해당했고, 길가에 정차한 차량 안에서 탱크에 치였다. 러시아군은 단지 재미로 그랬다"고 비판했다.
또 "수십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로 추방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의 행위에 완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유엔에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러시아군과 명령을 내린 자들은 모두 법의 심판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서 비토권을 갖는 안보리 체제 개혁도 촉구했다. 앞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를 비롯한 국제사회 여러 나라가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며 유엔 차원의 결의안을 추진했지만, 러시아와 중국 등의 거부권 행사로 좌절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우리는 안보리 거부권을 죽음의 권리로 바꿔 사용하는 나라를 대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이 결정을 막을 수 없도록 상임이사국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회의장에 부차 참상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공개되자 바실리 알렉스비치 네벤즈야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네벤즈야 대사는 "러시아군에 대한 엄청난 양의 거짓말을 들었다"면서 "러시아가 (전쟁에서) 기대만큼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건 민간인을 겨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부인했다.
그는 이번 전쟁 목적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를 정복하려는 게 아니라 돈바스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왔다"며 기존 러시아의 입장을 강조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특별군사작전'에 서명하면서 '우크라군에 의한 돈바스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문제 해결'을 명목으로 내걸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일컫는 돈바스 지역은 2014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크름반도를 병합하고 나간 뒤 분쟁 지역이 됐다. 친러계 분리주의 세력이 정부군과 8년간 내전을 벌였는데, 러 측이 이들을 경제·군사적으로 지원했다는 게 우크라이나와 서방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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