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장애인권교육센터에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어려움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있다. 사진은 기자가 지난 24일 교육센터에서 시각장애체험 중 저시력자 고글을 쓰고 시간 맞추기 미션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시각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흐르고 있어요."

시각장애인 박수웅씨(40대·남성)는 서울 양천구 장애인권교육센터에서 인권교육강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운전이 가능할 정도의 시력을 갖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력이 나빠져 지금은 빛이 있을 때 사람의 실루엣 정도만 인식하고 빛이 없으면 아예 볼 수 없는 상태다. 그는 교육센터에서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강의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행복하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도로 점거, 지하철 탑승 시위 등을 전개하면서 시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기자도 출근길에 지하철이 수십여분 멈춰 서는 바람에 지각하는 일도 있었다.

머니S는 이른 아침부터 절박하게 시위를 벌일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생활을 잠시나마 이해해보기 위해 직접 장애체험을 해봤다.

"장애인, 비장애인과 다른 삶 사는 것 아냐"

기자는 지난 24일 서울 양천구 장애인권교육센터(이하 교육센터)를 방문했다. 2011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양천구에 문을 연 교육센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행복한 지역사회 구현을 목표로 한다. 교육센터는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인권교육과 장애체험활동을 제공하고 장애인에게는 자기계발과 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한다.
기자는 시각장애체험을 하면서 3가지 미션을 수행했다. 사진은 기자가 지난 24일 교육센터에서 시각장애체험에 앞서 강사로부터 저시력자 고글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기자는 시각장애인 박수웅 강사의 도움을 받아 시각장애 체험을 위한 몇가지 미션을 수행했다. 수행에 앞서 기자는 저시력자의 시력과 비슷하게 조정된 고글을 착용했다. 고글을 처음 착용했을 때 기자는 숨이 막혔다. 앞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고글은 시력이 완전히 사라진 '전맹'(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장애) 수준이 아닌 저시력자 수준이었음에도 바로 앞 강사의 실루엣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미션은 책 정리하기였다. 생각보다 쉬운 미션이라고 생각한 기자는 손을 더듬어가며 크기와 색깔 별로 책을 정리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알고 보니 책에는 숫자가 쓰여있었는데 기자는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자는 첫 번째 미션인 책 정리하기에 실패했다. 사진은 기자가 지난 24일 교육센터에서 시각장애체험 중 책 정리하기 미션을 하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두 번째 미션은 고글을 낀 상태로 벽 시계를 보며 탁상시계를 같은 시간으로 맞추는 것이었다. 저시력자 고글을 낀 상태로는 도저히 벽시계의 시간을 읽을 수 없었고 강사가 시간을 말해줬음에도 앞이 보이지 않아 손에 들고 있는 탁상시계를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기자는 두번째 미션인 시계 맞추기 미션도 실패했다. 사진은 기자가 지난 24일 시각장애체험 중 시계 맞추기 미션을 하기 위해 벽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세 번째 미션은 줄자로 출입구의 너비와 높이 치수를 측정하는 것이다. 해당 미션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문까지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또 줄자로 너비를 측정하는데 겨우 성공했지만 줄자의 눈금이 보이지 않아 읽을 수 없었다.
기자는 마지막 미션인 줄자로 출입구 크기 측정하기마저 실패했다. 사진은 기자가 줄자로 출입문 크기 측정하기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세가지 미션을 모두 실패한 후 낙담하는 기자에게 강사는 소감을 물었다. 기자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두렵고 답답했다"고 답하자 강사는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시력이 0인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마다 시력이 다르듯이 시각장애인들도 안 보이는 정도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강사는 "평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이 모두 점자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전체 시각장애인 중 15% 이내로 소수에 불과하다"며 "그 외에는 큰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시력을 가졌거나 음성으로 책을 본다"고 설명했다.
강사는 전체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15% 이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자가 시각장애인용 점자책을 직접 만져보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그러면서 "전에 읽고싶은 책의 프로그램 변환을 요청했더니 4개월이나 걸리더라"라며 "새로 개봉한 영화도 화면해설 버전을 보려면 두달가량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의 시간과 비장애인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흐른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끝으로 그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며 "먹고 자고 살아가는 패턴과 주변 환경은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자의 일상이 본인에게 주어진 권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을 것"이라며 "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호소했다.

"작은 아이디어가 편리한 환경 만든다"

교육센터는 자립생활체험으로 휠체어를 직접 타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사진은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다양한 노면 체험을 하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기자는 시각장애 체험을 끝내고 난생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내부에 마련된 다양한 노면을 체험할 수 있었다. 노면 체험 코스의 길이는 3m밖에 되지 않았고 턱의 높이는 3~5cm 밖에 되지 않았으나 집중하지 않으면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또 기자는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눈높이에 있던 모든 것들이 기자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어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일상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지체장애인들의 불편함·소외감이 조금이나마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휠체어를 타고 유니버설 디자인(공용화 설계) 체험을 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의 유무와 상관 없이 모든 사람이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도구·시설·설비를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센터에서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된 화장실을 체험할 수 있다. 사진은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높이 조절 세면대를 작동하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유니버설 디자인 체험 코스는 화장실과 부엌으로 이뤄졌다. 화장실에는 휠체어를 타고도 거울을 볼 수 있게 설계된 경사거울, 공기압을 이용해 높낮이를 조절하는 세면대, 턱을 없앤 욕조 등이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됐다. 교육을 맡은 정신장애인 김모 강사(40대·여성)는 "작은 차이, 작은 아이디어가 편리한 환경을 만든다"며 유니버설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육센터에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된 부엌을 체험할 수 있다. 사진은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높이 조절 싱크대를 체험하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부엌에는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 텀블러, 원터치 밀폐용기, 위에서도 눈금을 읽을 수 있는 계량컵 등이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높이 조절이 되는 싱크대와 선반이었다. 싱크대는 레버로 공기압을 조절해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었고 선반은 리모콘으로 조절이 가능했다. 지체장애인 최도혁 강사(20대 남성)는 "설치 비용이 너무 비싸 아직 일반 가정에 적용하기는 이르다"며 "진입 문턱이 점차 낮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육센터에서는 6·1 지방선거를 대비해 지난 15일부터 25일까지 장애인을 대상으로 참정권 교육을 실시했다. 사진은 기자가 휠체어를 타고 투표 체험을 하는 모습. /사진=송혜남 기자

신연주 센터장은 "6·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대비해 장애인을 대상으로 참정권 교육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6일부터 25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실시했으며 양천구 내 장애인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성인발달장애인당사자 120여명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어 "만18세 이상 국민의 권리인 참정권을 가진 발달장애인이 유권자로서 권리행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전했다.

기자는 약 2시간 동안 장애체험을 했을 뿐이지만 생각보다 힘들었다. 짧은 체험으로는 비장애인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100%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이와 같은 체험을 해본다면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이 개선되고 어떻게 하면 장애인과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장애인 체험을 통해 그들과 함께 살아갈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