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역에서 발굴돼 지난 2020년 국내로 봉환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고 박진호 일병으로 확인됐다. 이에 군 당국은 박 일병에 대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개최한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오는 19일 오후 3시 동두천 국민체육센터에서 박 일병에 대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국유단은 "북한에서 미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하와이지부를 거쳐 대한민국까지 약 1만5470㎞의 여정 끝에 고인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돼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8촌 이내 가족 중 6·25전쟁에 참전했거나 참전 이후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가까운 보건소, 군부대·군병원, 보훈병원 등을 방문해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할 수 있다"며 "거동이 불편한 경우 국유단에 문의해 안내받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일병 유해에 대한 정확한 신원확인은 지난 2020년 박 일병의 동생 박진우씨가 6·25전사자 유가족임을 알게 된 농축협 관계자의 권유로 유전자(DNA) 시료를 채취하면서 이뤄졌다.
국유단은 경기 동두천 보건소를 통해 채취한 박씨 유전자 시료 분석결과를 토대로 가족관계 가능성이 있는 유해를 특정했고 추가검사 결과 지난달 서로 형제관계임을 확인했다.
형의 유해를 찾았단 소식에 박씨는 "집안을 위해 희생한 형님이 북한에서 돌아가셨다니 억장이 무너진다"면서도 "형님을 찾았다니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형님을 그리워하셨던 부모님 옆에 하루 빨리 함께 안장해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 일병은 지난 1928년 경기 고양군 신당리(현 서울 신당동)에서 4남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어 6·25전쟁 발발 뒤인 지난 1950년 8월16일 부산에서 국군에 입대했다.
박 일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징용돼 종 제작과 세공기술로 모은 돈을 꾸준히 부모님께 보냈다. 박 일병은 광복 뒤에도 부산에서 같은 일을 하며 집안을 일으켰다. 일본 징용 경험 때문에 일본어와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박 일병은 입대 후 일본으로 건너가 군사교육을 받은 뒤 미 육군 제7사단 제31연대에 카투사(KATUSA·한국군지원단)로 배치됐다.
이후 인천·원산상륙작전에 참여한 고인은 지난 1950년 11월 함경남도 장진군 일대에서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산화했다. 당시 박 일병이 배속된 미 7사단 31연대는 미 제1해병사단과 함께 중공군 7개 사단과 맞서 싸웠다.
박 일병이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자 박 일병의 부친은 "일본과 객지에서 힘들게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킨 효자였는데 가슴이 미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모친도 "하늘도 무심하다"며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고인의 유해는 장진호 전투 지역에서 북한 측이 발굴했으며 지난 1990년부터 지난 1994년 기간 동안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다른 발굴 유해와 함께 미국 측에 인도됐다.
우리 국유단은 이때 미국 측과 공동으로 유해 신원확인에 참여했고 그 중 박 일병을 포함해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들을 지난 2020년 국내로 봉환했다.
앞서 군 당국이 지난 2000년 4월 6·25전사자 유해발굴을 시작한 뒤 현재까지 신원을 확인한 전사자는 박 일병을 포함해 모두 193명이다. 유해가 발굴됐으나 비교할 유가족 유전자 시료가 없어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전사자 유해는 약 1만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