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가스 대란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가스공급업체 가즈프롬은 일부 유럽 고객에게 원활한 가스공급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불가항력 선언'을 공표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 닥치면 가스공급 계약 관련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러시아산 가스 최대 수입업체 유니퍼와 독일 에너지기업 REW도 서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니퍼는 가즈프롬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정식으로 거부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1일부터 러시아는 유지·보수를 이유로 메인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NS1)의 가동을 잠정 중단했다. 독일에선 러시아가 터빈의 반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스 공급량을 기존 대비 40% 수준으로 감소시키자 정기점검이 영구적 중단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가즈프롬은 오는 21일부터 작업을 마치고 재가동할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지난 14일 고객에 보낸 서한에는 지난달 14일부터 소급해 가스공급에 '불가항력'을 선언한 사실이 담겼다. 이 소식은 NS1의 보수 작업 중 공표됐다. 해당 선언은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재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유럽의 우려를 낳았다. 또 고물가 등 경제침체에 접어든 유럽이 에너지 위기까지 겹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불가항력은 약속된 비즈니스 의무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계약 의무를 다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가즈프롬은 이에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이 아닌 '비정상적' 상황 때문에 가스공급을 보장할 수 없다고 에둘렀다.
러시아가 유럽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깊은 우려를 표한다. ABN암로의 한스 반 클리프 수석 에너지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의 선언은 NS1 유지·보수가 끝나더라도 가스 공급을 재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첫 번째 암시처럼 들린다"고 밝혔다. 이어 "불가항력을 발동한 '비정상적' 상황은 정치적인 문제인지, 기술적인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며 "정치적인 문제일 경우 러시아-독일·유럽의 긴장 고조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연합(EU)의 현재 가스 저장 수준은 64%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기보다 다른 공급처를 찾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이날 아제르바이잔과 주요 가스 수송경로의 2배 증가를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한 것이 그 일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