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가 '르망 24시간' 첫 출전 만에 완주에 성공하며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0년 전 출범시킨 프리미엄 브랜드가 고성능 영역으로 무대를 넓히며 제2의 도약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 성과를 계기로 럭셔리·고성능차의 본고장인 유럽 시장 공략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팀(GMR)의 하이퍼카 GMR-001 19호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제94회 르망24시간 '최상위 하이퍼카 클래스'에 출전해 18대 중 13위로 완주에 성공했다. 함께 출전한 17호는 레이스 종료 7시간 반을 남기고 코너 탈출 과정에서 서스펜션 이상으로 리타이어 처리됐다.
1923년 시작된 르망 24시간은 세계 최고 권위의 내구 레이스 대회로 꼽힌다. 3명의 드라이버가 24시간 동안 서킷을 교대로 주행하는 방식으로 차량의 내구성과 성능은 물론 드라이버의 기량, 레이싱팀의 운영 역량 등이 종합적으로 요구된다. 완주 자체가 품질과 신뢰성을 증명하는 만큼 유럽에서는 완성차 업체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무대로 통한다.
제네시스는 이번 대회를 위해 레이스 전용 차량 GMR-001을 새로 개발했다. 현대차가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을 통해 축적한 모터스포츠 기술력을 기반으로 3.2ℓ 트윈터보 V8 엔진을 탑재, 흡·배기 시스템과 냉각·윤활 체계 등을 새롭게 설계했다.
이 같은 도전의 배경에는 정의선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정 회장은 제네시스 고성능 브랜드 '마그마'의 기획 단계부터 레이싱팀 출범까지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르망 24시 현장도 찾아 레이싱팀을 격려하고 레이스카 엔진과 주요 부품 등을 관심 있게 살펴봤다.
정 회장에게 제네시스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 브랜드다. 정 회장은 2015년 제네시스 출범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현대차의 고급화 전략을 추진했다. 제네시스는 EQ900을 시작으로 현재 G70·G80·G90 등 세단과 GV70·GV80 등 SUV, 전동화 모델을 아우르는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지난 3월 기준 국내 누적 판매는 100만대를 넘어섰다. 수입차 중심이던 국내 럭셔리카 시장의 판도를 바꾸며 '고급차=제네시스'라는 인식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누적 판매도 지난 1월 기준 150만대를 돌파했으며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는 8만2331대라는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달성했다.
고성능·럭셔리카의 안방인 유럽 시장은 제네시스의 남은 과제다. 지난해 제네시스의 유럽 판매량은 2519대에 그쳐 브랜드 인지도와 판매망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차가 이번 르망 24시 완주에 공을 들인 것도 현지 소비자들에게 제네시스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제네시스는 르망 24시 개막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2027년까지 폴란드·포르투갈·덴마크·오스트리아에 추가 진출해 유럽 판매망을 기존 7개국에서 11개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들 국가는 유럽 내에서도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지역으로 BMW·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 등 '독일 3사' 대비 강점을 가진 전동화 기술력을 앞세워 미래 럭셔리카 수요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시혁 제네시스사업본부장(전무)은 "제네시스의 유럽 확장은 단순한 외형 성장이 아닌 현대적 럭셔리 브랜드가 무엇인지를 재정의하는 과정"이라며 "전동화와 브랜드 경험을 앞세워 유럽 고객과 접점을 지속적으로 넓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