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연임 도전을 기정사실화한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첫 행보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지지층을 향한 구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친명(친이재명)계와 범친문계의 세대결이 앞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 전 대표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아 문 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눈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 사퇴한 걸 문 전 대통령이 알고 계셔서 등을 열심히 토닥여 주셨다"며 "오랜만에 뵈니 반갑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셔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평산책방 책방지기 자격으로 도서전에 참석했다. 정 전 대표와의 만남은 사전에 조율된 일정은 아니었다. 정 전 대표는 "문 전 대통령에게 사전에 허락받고 일정을 조율하고 온 게 아니다"라며 "원래 오늘 평산마을에 가서 인사드리려 했는데 이곳에 오신다고 해 찾아왔다. 문 전 대통령은 오늘 아침까지 제가 온다는 걸 모르셨을 것"이라고 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도서전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육성 회고록 ▲노무현 전 대통령 전집 운명이다 ▲문재인의 운명 ▲이재명 대통령의 책 결국 국민이 합니다 등 네 권을 구매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 책 네 권을 샀다"며 "오늘 아침 사퇴의 변으로 '김대중의 역사, 노무현의 역사, 문재인의 역사를 자양분으로 삼아 이재명의 역사를 더 꽃피워야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문 전 대통령이 '잘했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정 전 대표가 대표직 사퇴 직후 문 전 대통령을 찾은 것은 정 전 대표가 당내 신주류에 맞서 친노·친문 진영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정 전 대표는 당초 6·3 지방선거 직후에도 경남 양산을 찾아 문 전 대통령을 만나려 했으나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표직 사퇴를 선언하면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잇달아 언급했다. 그는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김대중 대통령이 제 정신적 지주"라며 "저는 노사모다. 저는 노무현 키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슴 벅찬 평양 능라도 경기장 연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창환 정치평론가는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가뜩이나 계파 갈등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대표직을 내려놓자마자 문 전 대통령을 찾은 것은 '친문 세력과 손잡고 당권 장악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이미지가 남을 수밖에 없다"며 "본인으로서는 표가 있는 곳을 찾은 선거운동일 수 있지만 여권 전체로 보면 대통령과 계파 간 갈등을 부추기는 행보로 비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전당대회 국면에서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하며 거리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앞서 친문계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의 도서전 참석은 매년 이어온 정례 일정"이라며 "도서전 관계자들과의 만남,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 시상식 참석 등 책과 관련된 행사 외 별도의 일정은 계획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정 전 대표를 비롯해 김민석 국무총리, 송영길 전 대표 등이 당대표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김 총리와 송 전 대표가 정 전 대표에 맞서 연대 전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전당대회가 친노·친문·친청(친정청래) 진영과 비당권파 친명(친이재명)계 간 대결 구도로 흐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대에 "민주당의 당권구도는 사실 친명 대 친문 대결 구도다"라며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관계도 좋지 않았던 만큼 갈수록 양쪽으로 치우치며 내부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