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7 더불어민주당 전국당원대회가 막을 내리고 김민석 당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새 지도부 앞에 놓인 숙제는 가볍지 않다. 경선 과정에서 깊어진 당내 계파 간의 골을 메워야 하고 국민의힘과의 극한 대치를 풀어내야 한다. 동시에 집권여당으로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고 2028년 총선 승리를 통해 정권 재창출의 기반도 닦아야 한다.
[시대]는 각계 원로와 정치학자 등 7명을 전화로 인터뷰하고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도 살폈다. 이들이 새 지도부에 가장 많이 주문한 것은 '통합'과 '협치'였다. 단순히 "이제 그만 싸우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민주정당 내에서 비판과 경쟁은 필연적이지만 패배한 쪽을 밀어내지 않고 당 운영의 한 축으로 끌어들이는 실질적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야당 역시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언제든 국민의 선택을 받아 집권할 수 있는 경쟁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대통령실을 일방적으로 추종하거나 반대로 차별화를 위한 충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청래 쪽도 써라"…말 아닌 인사로 통합 증명해야

김 대표에게 요구되는 우선 과제는 전당대회 이후의 계파 통합이다. 김민석 대표가 자신을 지지한 세력만으로 주요 당직과 당 운영을 꾸릴 경우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친명(친이재명)·친청(친정청래) 간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설훈 전 의원은 "김민석 대표가 정청래 쪽에 있는 사람들까지 우대하는 인선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며 "심지어 정청래까지 포함해 모두 같이 가는 '원팀 민주당'으로 가야 계파 갈등을 수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당대회를 통해 마음이 상했다고 해서 반대편을 내쳐서는 안 된다"며 "괜찮은 사람은 뽑아 쓰는 탕평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도 통합이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 전 의장은 "당내 선거가 끝나면 통합이 제1의 문제"라며 "서로 대립했던 계파와 인물들을 포용해야 하고 말로만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당 운영에 그들을 참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형식적인 화합이 아니라 내용적으로 화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밖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12일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민주당 당대표 후보자 마지막 TV토론회에는 상대 후보의 장점을 말하는 '칭찬합시다' 시간이 있었다. 줄곧 날 선 공방을 주고받던 후보들이 서로의 강점을 평가한 짧은 장면은 이후 유튜브와 숏폼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재가공되며 화제가 됐다. 댓글에서는 "16일까지만 싸우고 17일부터는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진작 이렇게 장점과 능력으로 경쟁해라", "국민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당원보다 국민이 더 어른"…강성 지지층 넘어 국민 봐야

전당대회에서 이기는 정치와 총선에서 이기는 정치는 같지 않다. 새 지도부가 당원과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당내 경쟁에서 동원력이 큰 지지층의 요구와 중도층을 포함한 국민 전체의 요구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을 바라볼 것인지가 김민석 체제의 또 다른 시험대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당원보다 국민이 더 어른"이라고 했다. 그는 "그게 거꾸로 된 경우가 많은데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한민국의 정당은 어느 정당이나 국민과 국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정당 정책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권력투쟁만 한다면 주인인 국민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야당은 에너미가 아니라 라이벌"…협치의 출발은 상대 인정

당내 통합만큼 많은 주문이 나온 것이 야당과의 관계 복원이다. 원로들은 지금의 여야 관계가 정책과 노선의 경쟁을 넘어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단계까지 왔다고 우려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야당을 '에너미'(enemy·적)로 보지 말고 '라이벌'(rival·경쟁자)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상대를 인정해야 대화가 되고 대화를 해야 협치와 타협이 가능하다"며 "민주주의의 기본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대표 시절 정치를 협치의 모델로 제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9년 가족법 개정이다. 당시 가족법 개정안이 여당의 반대로 막히자 야당 대표였던 김 전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직접 협조를 요청했고 결국 법안 통과를 이끌어냈다. 김 전 대통령은 훗날 야당이 정부의 다른 안건에 협조하는 대신 가족법 개정을 받아낸 정치적 '바터'(교환)였다고 회고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도 정치의 본질은 결국 '주고받는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정치가 극단적인 대결로 흐르는 이유 중 하나는 힘의 논리를 너무 빨리 사용하기 때문"이라며 "한쪽은 다수결을 바로 쓰고 다른 한쪽은 거부권이나 탄핵 같은 수단을 바로 꺼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는 결국 주고받는 것"이라며 "보수는 진보를, 진보는 보수를 정권을 맡을 수 있는 대안 세력으로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여야 대치의 핵심 쟁점이었던 법제사법위원장 배분 문제도 예로 들었다. 그는 "법사위원장을 왜 여당이 꼭 차지해야 하느냐"며 "야당이 정말 원한다면 줄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임기 2년을 1년씩 나눠 맡는 식으로라도 타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사위원장은 제2당이 맡는 방식으로 여야가 권력을 나누는 관행이 17대 국회 이후 대체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2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협상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충돌했고 결국 민주당이 서영교 의원을 법사위원장으로 단독 선출했다.
"과거 파묘 그만"…적통 아닌 미래·민생 놓고 경쟁해야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적통 논쟁과 과거사 공방을 이제는 끝내고 미래 의제로 경쟁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문 전 의장은 "급변하는 국제 환경과 AI가 불러온 변화처럼 아차하는 순간 100년이 사라질 수 있는 격변기에 과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당이 집중해야 한다"며 "다음 선거만 생각하는 '폴리티션'(politician)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스테이츠먼'(statesman)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 정치학자인 이재봉 원광대 명예교수도 "경쟁을 한다면 얼마든지 치열하게 할 수 있다"면서도 "서로 흉보고 과거를 파헤치는 이른바 '파묘'식 진흙탕 싸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끝나면 다시 한 몸이 돼 미래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합하자, 양보하자'고 말한다고 당내 갈등이 사라지거나 야당과의 협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집값을 안정시키고 세대 간 갈등을 줄이는 데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성과가 있어야 당내 분란도 줄고 야당도 정쟁보다는 정책 경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대가 무엇 요구하는지 예리하게 관찰"…건전한 당정청 관계도 시험대

마지막 과제는 이재명 정부와의 안정적인 관계 구축이다. 집권여당인 만큼 정부 성공에 힘을 보태야 하지만 대통령실의 입장을 그대로 따라가는 '거수기'가 돼서도 안 되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각을 세워서도 안 된다는 주문이다. 정청래 전 대표 체제에서는 강성 당원을 의식한 선명성 노선이 부각되면서 당정 간 긴장이 이어졌고 크고 작은 잡음이 반복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임 전 의장은 "현 이재명 정부를 성공시키는 것이 민주당의 가장 큰 과제"라며 "정부의 정책과 실천을 적극 지원하면서도 행정부와 긴밀하게 협조해 정치적 일체감을 형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그는 "그 모든 일의 뿌리에는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예리하게 관찰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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