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 이후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속도'다.
40년 만의 행정통합인 만큼 조직을 정비하고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주청사 문제부터 내년도 국비 확보, 국립의대,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까지 해결해야 할 현안도 산적해 있다.
통합특별시가 출범과 동시에 여러 현안을 서두르는 이유다.
그런데 14일 전남광주특별시의회 운영위원회에서 신민호 위원장이 던진 질문은 이 속도전에 한번쯤 멈춰 서서 생각해볼 지점을 보여줬다.
"빨리 가는 것이 과연 제대로 가는 것인가."
이번 시민추천 정무부시장 논란을 시민추천제 자체의 찬반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
논란의 핵심은 보다 구체적이다. 현행 조례가 정한 부시장 업무와 다른 분야로 공모를 진행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조례 개정 전에 후보자 2명을 지명한 절차가 적절했는지 다.
현행 조례는 인사청문 대상인 지방직 부시장의 업무를 문화산업과 경제농림 분야를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민추천제 공모 분야는 '산업·일자리·경제·노동·첨단주력산업'과 '시민주권·청년인구정책·보건복지·양성평등'으로 제시됐다.
의회가 특히 문제 삼는 것은 청년·인구·보건복지 등의 사무다. 기존 지방직 부시장 업무와 다른 성격의 사무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조례가 개정되기 전에 공모와 자격심사를 거쳐 지난 6일 후보자 2명이 지명됐다. 따라서 의회가 요구하는 답변은 복잡하지 않다.
"왜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그런데 이날 운영위에서 집행부와 의회의 공방을 지켜보면 이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보다 통합 초기의 행정적 불가피성을 둘러싼 설명이 더 많이 오갔다.
신 위원장은 이를 두고 "돌아온 것은 근거가 아니라 해명이었고 사실관계가 아니라 불가피성이었다"고 지적했다.
집행부의 사정도 이해할 수 있다.
통합특별시 출범 초기인 만큼 기존 조직과 새로운 조직체계가 맞물리는 과정에서 조례와 실제 행정수요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 조직개편이 예정돼 있고 부시장 직무대행이 장기화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판단도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행정에서 '불가피했다'는 설명과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법적 근거는 같은 말이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 논란의 본질이다.
조례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개정하면 된다. 새로운 행정체계에 맞춰 업무를 재편해야 한다면 의회의 심의를 거쳐 제도를 고치면 된다.
문제는 그 전에 공모하고 평가하고 후보자를 지명했다는 데 있다.
속도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절차가 뒤따라가서는 안된다. 특히 통합특별시 출범 초기라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 기획·예산 ·인사 등 핵심부서가 상주할 주청사 문제와 각종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통합 초기라서", "시급한 현안이라서", "불가피해서"라는 이유가 통용된다면 통합행정의 기준은 무엇으로 세울 것인가.
시민이 행정을 신뢰하는 근거는 행정의 좋은 의도만이 아니다.
법과 조례, 공개된 절차와 기록이다. 이번 논란 역시 간단한 방법으로 풀 수 있다.
집행부가 조례와 공모 분야가 달랐던 이유와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면 된다. 조례 개정 전에 후보자 지명이 가능했다는 판단의 근거가 있다면 공개하면 된다.
반대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면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된다.
그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신민호 위원장은 이날 집행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문제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지방자치법 제49조에 따른 행정사무조사 등 의회 권한 행사를 검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제 공은 집행부로 넘어갔다.
의회가 정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집행부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시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자료를 공개하면 된다.
통합특별시가 정말 속도를 내야 한다면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논란을 빨리 덮는 것이 아니다. 논란의 근거를 빨리 공개하고, 잘못이 있다면 빨리 바로잡는 것이다.
속도와 절차가 충돌할 때 어느 하나를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둘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행정의 원칙을 세우라는 것이다.
지금 시민이 궁금한 것은 행정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느냐만은 아닐 것이다.
"그 결정은 어떤 법과 절차에 따라 이뤄졌는가." 새로운 광역행정체계가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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