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하던 정보기술(IT) 업계가 격랑에 휩싸였다. 삼성전자 노사 협상 이후 노동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 기업은 물론 삼성SDS를 비롯한 시스템통합(SI) 업계까지 노사 갈등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갈등의 초점도 단순한 임금 인상률을 넘어섰다. 계열사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인사·보상 제도에 직원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네이버 노동조합은 지난 20일 경기 성남시 네이버 본사 1784에서 조합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6년 통합교섭 킥오프'를 개최했다. 노조는 네이버 본사와 계열사 등 16개 법인이 하나의 테이블에서 교섭하는 통합교섭 체계 도입을 요구했다.
네이버 노조는 2018년부터 법인별 개별교섭을 진행해왔다. 서비스와 개발 업무는 여러 계열사로 나뉘어 있지만 예산과 임금, 인사 등 핵심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은 본사에 집중돼 있어 개별교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최근에는 네이버제트의 임금 동결이 갈등의 불씨가 됐다. 네이버 본사와 주요 계열사가 올해 5.3% 수준의 연봉 인상에 합의한 것과 달리 네이버제트는 임금을 동결하면서 교섭이 결렬됐다. 쟁의권을 확보한 네이버제트 노조는 이달 안에 회사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달 9일 추가 단체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카카오도 비슷한 흐름이다. 카카오와 카카오페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 등 5개 법인은 지난 6월10일 창사 이후 처음으로 공동 부분파업을 벌였다. 같은 달 29일에는 조합원들이 연차와 휴가를 사용해 하루 동안 업무를 중단하는 '로그아웃데이'도 진행했다.
카카오 본사의 임금협상은 타결됐지만 계열사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카카오뱅크와 디케이테크인, 엑스엘게임즈에서는 임금과 성과급, 고용안정 등을 둘러싼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 노조는 지난 21일 사측의 '카카오AI'·'카카오X' 인적분할 발표를 계기로 법인별 개별교섭은 유지하되 공동요구안을 함께 제시하는 공동교섭 체제 전환에 나섰다.
카카오 노조는 26일 판교역 광장에서 카카오뱅크 전면파업 결의대회에 이어 공동교섭 선포식을 열었다. 카카오뱅크 노조는 오는 31일부터 5일간 전면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노조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SI 업계에서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SDS는 기존 현금성 목표인센티브(PI)를 폐지하고 연봉의 20% 수준을 자사주로 지급하는 내용의 인사제도 개편을 추진했지만 직원 투표에서 과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제도 개편 과정에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지난 7월6일 삼성SDS 창사 이후 첫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노조는 출범 하루 만에 조합원 5650명을 확보하며 과반노조가 됐고 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현대오토에버와 신세계아이앤씨에서도 노조가 출범해 인사평가와 보상체계 개선을 요구하며 조직화에 나서고 있다.
IT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사 협상 과정에서 제기된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N%)' 논의가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삼성전자와 같은 수준의 요구를 관철하기는 쉽지 않더라도 그동안 보상체계가 미흡했다는 불만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자 중심의 IT 업계는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한 제조업보다 조직 결속력이 약한 편이지만 이번 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직원들의 문제의식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인공지능(AI)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고용 불안에 대한 우려도 이 같은 움직임이 태동한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IT 기업 오라클은 최근 1년 동안 전체 직원의 약 13%인 2만1000명을 감원했고 메타도 지난 5월 8000명을 해고했다. 아마존은 올해 초 사무직을 중심으로 약 1만6000명을 줄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도 전 세계 직원의 약 2.1%에 해당하는 4800명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코딩과 테스트, 시스템 운영 등 IT 업계 핵심 업무가 AI로 대체되기 쉬운 분야인 만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고용안정과 함께 성과에 걸맞은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IT 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사 협상의 전기가 마련된 만큼 본사로부터 보다 명확한 약속을 받아 다가올 고용 불안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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