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바이오팜이 두 번째 블록버스터(연매출 10억달러 이상 의약품) 확보를 위해 1조원 규모의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바이오헤이븐의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BHV-7000)을 도입하며 두 번째 성장축 구축에 나선 것이다. 엑스코프리 중심의 성장 구조를 넘어 미국 뇌전증 시장 공략을 확대하고 복수의 블록버스터 제품을 보유한 글로벌 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이사 사장은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단일 제품 바이오텍과 멀티프로덕트 바이오텍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세노바메이트(엑스코프리)와 오파칼림이라는 두 개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엑스코프리에 이어 또 하나의 블록버스터를 올리는 것은 SK바이오팜이 다른 리그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계약이 주목받는 이유는 신약 후보물질 하나를 추가했다는 데 있지 않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시장에서 엑스코프리를 직접 판매하며 국내 바이오기업 가운데 드물게 신약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독자 역량을 입증했다. 하지만 성장의 축은 사실상 엑스코프리 하나에 집중돼 있었다. 업계에서 SK바이오팜의 다음 과제로 '포스트 엑스코프리' 확보가 꾸준히 거론돼 온 배경이다.
엑스코프리가 미국 시장에서 성장 궤도에 오른 지금이 후속 제품 확보의 적기로 평가된다. 기존 판매망과 전문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데다 단일 품목 의존도를 낮추고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 첫 번째 성공이 기술력을 입증하는 과정이라면 두 번째 성공은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는 분기점으로 받아들여진다.
SK바이오팜은 이날 미국 바이오헤이븐으로부터 선택적 칼륨채널(Kv7) 활성제 계열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과 관련 화합물, Kv7 디스커버리 플랫폼에 대한 전 세계 독점 권리를 확보하는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규모는 최대 7억9500만달러(약 1조1000억원)이며 선급금은 4억달러(약 5500억원)다.
이 사장은 "지난해까지는 세컨드 프로덕트 확보 자체가 목표였지만 이후 더 좋은 물질을 찾기 위해 시간을 썼다"며 "결국 우리가 가장 잘하는 분야를 확대하면서 시장 내 위치를 강화할 수 있는 제품을 찾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팜이 오파칼림을 선택한 배경에는 엑스코프리와의 시너지가 있다. 엑스코프리가 강력한 발작 억제 효과를 앞세워 난치성 환자와 뇌전증 전문의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왔다면 오파칼림은 안전성과 내약성을 강점으로 보다 넓은 환자군을 공략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일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 서로 다른 환자군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유창호 SK바이오팜 전략부문장 겸 사업개발본부장은 "강력한 약효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엑스코프리, 안전성과 내약성이 중요한 환자에게는 오파칼림을 투약할 수 있다"며 "두 제품을 아우르는 뇌전증 포트폴리오 가치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거래의 또 다른 의미는 미국 사업 기반의 활용도 제고에 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자회사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150명 이상의 현지 영업 조직과 주요 뇌전증 센터, 신경과 전문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신약 승인 이후 판매 조직을 새로 꾸려야 하는 바이오기업들과 달리 기존 상업화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제품 수가 늘어날수록 영업 조직의 효율성은 커진다. 업계에서는 오파칼림 도입이 파이프라인 확보를 넘어 엑스코프리를 통해 구축한 미국 사업 기반의 활용도를 높이는 투자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추가 제품이 상업화될 경우 기존 영업망의 매출 레버리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오파칼림은 현재 성인 부분발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3상이 진행 중이다. SK바이오팜은 올해 말 RISE3 임상의 첫 톱라인 결과를 확인한 뒤 후속 개발을 거쳐 이르면 2029년 미국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계약 구조엔 속도와 효율성을 고려한 전략이 반영됐다. 후기 임상은 원개발사인 바이오헤이븐이 계속 수행하고 관련 비용은 SK바이오팜이 부담한다. 개발 주체 변경에 따른 시행착오를 줄이고 원개발사의 경험을 활용해 개발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다.
유 본부장은 "SK바이오팜은 전략적 의사결정을 맡고 바이오헤이븐은 임상 수행 경험을 살려 개발을 이어가는 구조"라며 "양사 협력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어 사실상 원팀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사업을 기반으로 방사성의약품(RPT), 표적단백질분해(TPD) 등 차세대 모달리티 분야로 연구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오파칼림과 엑스코프리를 양대 축으로 안정적인 현금창출 기반을 확보하고 이를 미래 성장동력 투자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오파칼림은 엑스코프리 이후 SK바이오팜이 처음으로 확보한 대형 성장 카드다. SK바이오팜은 기존 미국 판매망과 뇌전증 전문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업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오파칼림이 상업화에 성공할 경우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사업 기반이 한층 강화되고 단일 제품 중심 기업에서 포트폴리오 기업으로의 전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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