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 1992년 8월 24일. 이상옥 당시 외무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그해 9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태극기와 오성홍기를 함께 흔드는 인파가 그를 맞았다. 천안문 광장에는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한중 수교 이후 34년 간 양국 간 교류가 급증하면서 기술이 새어 나가는 통로도 함께 넓어졌다. 시행을 앞둔 개정 형법으로도 중국 산업스파이를 간첩죄로 처벌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 등에 대해선 중국 등 외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레드라인'(한계선)을 설정하고,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간 교역액은 43배로 늘었다. 1992년 63억7900만 달러였던 대중 교역액은 2024년 2728억8900만 달러, 지난해 2727억3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4%에서 20%대로 높아졌다. 2022년 이후 주춤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23년째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서울대 국제학연구소의 '한중 경제통상관계 30년 회고와 전망' 논문에 따르면 두 나라의 관계는 '분업 협력'에서 '경쟁적 통합시장'으로 변해왔다. 과거 한국이 중간재를 공급하고 중국이 가공·수출하던 구조였다면 이제는 반도체·이차전지 등 같은 시장을 놓고 다투는 경쟁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경쟁국인 한국의 산업기술을 노리는 중국 측의 정보 활동도 늘었다. 한중 수교 이후 넓어진 교류·협력의 저변이 기술과 정보가 새어 나가는 통로로 작용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2년 이후 매년 300명 이상이 산업기술 유출 사범으로 검거됐는데, 해외로 기술이 유출된 사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흘러나간 사례였다.



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지난해말 기소된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한국 반도체 핵심기술 유출 사건이 대표적이다. CXMT는 이렇게 확보한 공정정보를 바탕으로 10나노대 D램 양산에 성공했다. 피해액은 최소 수십조원으로 추산된다. 유출에 가담한 삼성전자 부장 출신 등 10명에게 적용된 혐의는 간첩죄보다 실질적 형량이 가벼운 산업기술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었다. 간첩죄 적용 대상이 '적국'으로 한정돼 있어서다.

다음 달 시행을 앞둔 개정 형법이 73년 만에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넓힌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다. 그러나 개정법으로도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산업스파이 활동을 간첩죄로 처벌하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외국의 지령·사주'를 수사기관이 입증해야 하는데, 산업 스파이 특성상 지령·사주의 증거가 남아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개정 형법상 외국을 위한 간첩은 3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시대]와의 통화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을 유지하면서도 강한 보호 체계를 갖추는 것은 관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라며 "양국 최고위층이 만나는 계기마다 '레드라인(넘지 말아야 할 선)'을 반복적으로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외국 자본이 특정 분야에 유입되면 공시하도록 하고, 군사·안보 관련 정보에는 서로 접근하지 않기로 하되 이를 어긴 사실이 발견되면 공동으로 조사하는 원칙을 세우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대중국 교역 비중이 높은 호주는 이미 이런 방향으로 법제를 정비했다. 호주는 2018년 간첩·외국간섭방지법과 함께 외국의 이익을 대신하는 활동을 등록하도록 하는 외국영향력투명성제도(FITS)를 도입했다.

한중 관계를 호혜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산업스파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국법은 국가 안전과 이익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폭넓은 수단을 갖고 있는 반면 우리는 그런 대응 수단이 없다"며 "이런 비대칭을 방치하면 결국 한중관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간첩죄를 적어도 중국에 준하는 정도로 개정하거나 어렵다면 대통령령을 활용해서라도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