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신재민 편집위원


현대자동차 노사가 진통 끝에 마련한 2026년 임금교섭 잠정합의안 중 '기술직 500명 신규 채용'을 두고 경영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현장 안정을 위한 절충안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노조의 파업 압박에 밀려 사측이 헌법과 판례상 고유 권한인 '채용·인사권'을 내주게 된 기형적 거래라는 지적이다.

과거 현대차 노사의 교섭 주요 쟁점은 교대제 개편이나 심야 잔업 폐지 등 근로조건 개선에 집중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유럽의 관세 장벽과 글로벌 전동화 전환으로 생산 거점 재편이 가시화되자 노조의 요구는 신차 배정 동의권, 배치전환 협의, 기술직 신규 채용 등 경영권 영역으로 급속히 확장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번 교섭에서도 채용 카드가 등장한 배경은 노조의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노조는 향후 5년간(1966~1970년생) 베이비부머 세대 1만1025명이 퇴직하는 상황을 마주하며 '근로조건' 프레임을 짰다. 원칙적으로 채용과 인력 배치는 사측의 고유 권한(임의적 교섭 대상)이지만 노조가 이를 현장 노동 강도와 결부시키면서 사실상 필수 교섭 안건으로 끌어들였다는 시각이다.

사측은 최고 호봉 정규직의 정년 연장 요구로 누적될 고정비를 방어하고 장기화된 파업을 조기에 수습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결국 사측은 자발적 인사 계획이 아닌 파업 철회의 대가로 2027년 하반기 200명, 2028년 300명 등 500명의 신규 채용을 내주는 방어적 타협을 택했다. 여기에 1인당 4084만원 수준의 임금·성과급 인상과 노조 활동 관련 손해배상·가압류 10건(213억7000만원) 전액 철회까지 얹어주며 합의를 끌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현재 진행 중인 울산 1공장과 4공장 2라인 재건축으로 인해 대규모 사내 전환배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당장 대규모 신규 채용을 늘리기 어려운 경영상 한계에도 분할 채용안을 수용했고 노조는 '향후 추가 채용을 재논의한다'는 단서까지 달아 차기 교섭에서도 활용될 여지를 남겼다.



전문가들은 노사가 눈앞의 파업을 막기 위해 본원적 경영권을 흥정 테이블에 올리는 관행이 고착화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사협상에서 임금과 근로시간, 복지 등 근로조건을 논의하는 것은 정상적이지만 신규 채용 규모나 구체적인 인력 배치까지 노조가 협상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채용과 인력 배치는 기업의 생산 전략과 기술 변화, 시장 상황에 따라 경영진이 탄력적으로 결정해야 할 핵심 경영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를 매년 노사협상의 반대급부로 주고받는 관행이 정착되면 인력 운용 효율성이 떨어지고 결국 생산비용 상승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는 "노조 입장에선 정년퇴직 등으로 점차 (노조)규모가 줄어드니까 그 속도를 늦추는 차원에서 신규 채용 합의를 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며 "이 부분이 해결되니 나머지 임금성 합의안은 쉽게 통과된 것"이라고 짚었다. 노조의 아쉬운 부분을 사측이 활용했다는 해석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대차 교섭은 복잡한 요구안 속에서 명분과 실리를 정교하게 분리하는 구조여서 노조의 채용 요구에 사측이 감당 가능한 선에서 명분을 세워주고 실리를 챙기기에 좋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채용과 인력 배치 문제는 경영권에 해당하지만 노조는 이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며 "회사는 빠른 협상을 위해 이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상황이 고착화하면서 장기적으로 기업의 인사·경영 유연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