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 24일 제주시 한림읍 소철나무 숲에서 실종자 장미란씨 시신을 발견해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오원춘 사건'부터 복기해보자. 국민의 구조 요청을 접한 경찰의 부실 대응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지난 2012년 4월, 경기지방경찰청 112 신고센터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오원춘에게 납치돼 성폭행 위기에 처한 A씨 신고였다. 그러나 경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시간을 날려 보냈다. A씨는 끝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특히 경찰은 A씨와 통화한 시간을 축소해 허위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은폐 논란과 함께 거센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파장은 상당했다. 조현오 경찰청장과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이 동시에 옷을 벗었다. 사면초가의 경찰은 시스템 개선에 착수했다. 112 센터에서 신고 전화를 받지 못하면, 경찰이 신고자에게 전화하는 '콜백 제도'가 이때 생겼다. 또 신고자 휴대전화의 위치 파악도 쉽게 하도록 만들었다. 경찰은 장비와 기술로 '시스템'을 고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얼마나 안전해졌을까. 제주도에서 숨진 채 발견된 장미란씨 사건은 여러모로 오원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먼저 연인과 가족이 보낸 구조 신호에 경찰이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는데서 그렇다. 또 경찰은 "장씨와 연락이 닿았다"며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거짓이었다. 14년이 지나면서 국가의 '치안 시스템'은 더욱 견고해졌다. 장씨 실종 당시 한림읍 일대에는 CCTV도 118대나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허무한 사건 종결로 무용지물이 됐다.

경찰은 장씨가 범죄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에 국가가 응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경찰은 이번에도 '시스템'을 손대려 한다. 실종 사건을 종결할 때 형사과장이 서면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즉각 시행키로 했다. 그러나 결재 칸을 하나 늘리는 것으론 해법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보다 '사람'이다. 전국 13만명 경찰이 현장에서 사명감을 발휘하지 않으면 기술과 장비, 절차는 말짱 도루묵이다. 전례가 이를 입증한다. 앞서 콜백 제도를 도입한 뒤 3년이 지나 감사원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조사했다. 회신 비율은 고작 8%였다.

결국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도 그걸 움직이는 사람이 관건이다. 사실 경찰에서 사람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3년 영화 '투캅스'는 뇌물 받는 경찰 이야기를 풍자해 인기였다. 당시 경찰을 바라보는 사회상을 반영했다. 보이는 부패는 처벌하면 됐다. 그 뒤로 경찰은 많이 변했다. 과학수사 시스템을 도입했고, 업무 전문성도 높였다. 이제 눈으로 보이는 직무 역량이 떨어진다면 재교육이나 인사 조치를 하면 된다.



그러나 '책임감이 부족해서, 귀찮아서, 관행이어서' 국민 신고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경찰이 존재한다면 해법도 달라야 한다. 외부에서 쉽사리 알아챌 수 없기 때문이다. 짧은 임용 절차에서는 책임감, 판단력, 직업적 소명의식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런 자질이 5년, 10년 뒤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다. 상시적인 평가와 관리, 처방이 따라야 하는 이유다.

참고로 미국은 80년대부터 문제 징후 경찰관을 미리 발견해 관리하는 '조기경보체계(EWS)'를 확대해 왔다. 예컨대 동일한 경찰관에게 민원이 3번 제기되면 경고 신호로 판단해 재교육하고 업무 모니터링에 나서는 프로그램도 있다. '누군가 경찰을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자연스럽게 책임감도 높인다. 국내 경찰은 5년마다 직무적성 검사를 해왔는데 직무 스트레스 관리에 무게를 둔 측면이 있다. 최근엔 이를 '정신건강 종합검진'으로 재편했다. 경찰청에 확인해보니 EWS처럼 반복적 문제 행위, 직무 태도 등을 데이터로 조기 포착해 관리하고 재교육이나 업무조정으로 연결하는 별도의 체계는 없다고 한다.

나아가 일각에선 10월 시행되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와 연계해 제주도 사건을 바라본다. 경찰의 견제 장치가 약화되면서 '사건 암장'이 잇따를 것이란 우려다. 물론 보완수사권이 존재하면 경찰도 검사를 의식할 수 있다. 다만 검사가 모든 사건을 감시하진 못한다. 무엇보다 보완수사권에 프레임을 맞추면 해법의 방향도 틀어진다. '경찰 내부'로부터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 경찰 자질과 역량을 놓고 논란이 확산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경찰 개혁 기구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하려면 제대로 나서야 한다. 한국 실정에 맞는 상시 자격 관리제를 마련하는 작업을 논의해볼 만하다.

국가는 경제력, 국방력, 외교력만으로 강해지는 건 아니다. 국민 한명이 사라지고 위험에 처했을 때, 끝까지 찾아내고 적시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13만명에게 경찰 제복을 입히는 것은 쉽지만, 13만벌 제복 모두에 책임감을 얹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경찰 개혁 기구'가 그 임무를 맡아야 한다. 다만 상시 자격 관리가 경찰관 처벌이나 감시를 위한 것이어선 안된다. 미래의 문제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해 경찰관이 제 역할을 하도록 돕는다는 목적이 더 크다. 장미란씨 제주도 숙소와 사망 장소는 도보 5분 거리였다. 그 짧은 거리를 국가가 다시 찾아가는 데 104일이 걸렸다. 그 시간을 줄이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김준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