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25일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당정 협의를 열었다. 당정은 이 자리에서 820조 원 규모로 예상되는 사상 최대 슈퍼 예산을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미래 첨단산업 육성에 집중 투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반도체, AI, 로봇, 전기차 등의 분야에서 미국 중국 대만 일본과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미래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재정지출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특정 분야에 정부 예산이 과도하게 중복 지원되고, 정부의 지출 확대가 꺼져가는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되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당정이 선정한 5대 투자 분야는 반도체·피지컬 AI·AI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 우주·항공·바이오산업 등 미래 성장엔진, 청년 성장 단계별 지원확대, K자형 양극화 대응과 지방주도 성장 지원, 국민안전 강화 등이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늘어난 재정여력을 미래에 더 많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한 씨앗으로 삼아서 생산적 재정전략으로 전환해야 되겠다. 지금은 눈앞의 재정 수치에 매몰되는 우를 범할 때가 아니다"라며 정부와 국회에 적극재정 추진을 주문했다.
정부가 여당과의 협의 내용을 반영해 다음 주 발표할 내년 예산안은 총 820조 원 규모다. 올해 본예산 727조9000억 원보다 12.6% 많은 사상 초유의 예산이다. 본예산 기준으로 전년보다 10% 넘게 예산이 증가하는 것도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올해부터 집중적으로 발생할 반도체 '추가세수' 등을 활용해 정부가 조성할 계획인 '100조 원+α' 규모의 '미래대응기금' 가운데 40조 원도 내년 예산안에 포함될 전망이다.
미중 신냉전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반도체 등 첨단분야에서 중국의 급속한 추격을 고려할 때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정투자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초격차 확보를 위한 '전격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특정 분야에 예산이 이중, 삼중으로 들어가거나, 성장 잠재력 강화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 분야에까지 낭비될 수 있다는 점은 문제다. 한국은행은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높여 돈줄을 죄는데, 정부는 지출을 대폭 확대해 시중 유동성이 불어날 경우 인플레이션 제어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초호황으로 세금수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나랏빚은 줄지 않고 절대 규모가 계속 커지는 것도 문제다. 성장률 회복에 힘입어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 미만에서 그친다지만, 국가채무는 올해 말 사상 처음으로 1400조 원을 넘어선다. 이대로라면 내년에 나랏빚 이자로만 40조 원 이상을 써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동의 없이 예산의 20∼30%를 정부 재량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미래성장기금이 정부가 아무 때나 끌어다 쓰는 '쌈짓돈'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추가세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별도의 기금으로 떼어놓지 않는다면 나랏빚을 갚는 데 우선적으로 쓰였을 돈이다. 정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를 반도체 특수를 기반으로 조성되는 이 기금이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한 생산적 부문에만 투입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부터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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